"호로자식" 정조 편지 '18세기 인터넷' 보듯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 2009.02.10 09:38
↑ 정조가 신하인 삼한지에 보낸 비밀편지(어찰).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공개자료.

"참으로 호로자식이라 하겠다", "과연 어떤 놈들이기에 감히 주둥아리를 놀리는가", "입에서 젖비린내 나고 미처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한 놈"

조선 22대왕 정조가 신하에게 보낸 비밀편지 내용이다. 왕이 과연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실제 정조가 친필로 썼다.

10일 성균관대 동아이상학술원에 따르면 최근 공개된 정조가 쓴 299통의 편지(정조어찰첩)는 1796년 8월20일부터 1800년 6월15일까지 작성된 것으로, 정조가 노론(老論) 벽파(僻派)의 지도자 심환지(1730∼1802년)에게 보낸 것이다.

어찰 299통 중 3건을 제외하고 모두 정조의 친필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환지와 하루가 멀다 하고 주고받은 데다 다른 각료들과도 이런 서신을 주고받았을 것임을 고려하면 정조는 엄청난 양의 편지를 써낸 것이다.

심환지는 편지를 읽고 나서 즉시 없애라는 정조의 명령을 거부하고 어찰을 고스란히 보관했다. 어찰을 받은 날짜와 시간을 기록, 어찰의 작성 시기도 명확하게 남겼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관계자는 "비밀편지에는 국왕과 대신 사이에 국정현안을 놓고 갈등하고 조정하고 첩보를 수집하고 여론동향을 캐는 다양하고 은밀한 통치행위의 비밀이 담겨 있다"며 "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와 같은 공식적인 역사에서는 쓸 수 없는 통치자와 권력자들 사이의 암투와 흑막 등이 실려 있다"고 말했다.

정조는 자신과 대립각을 세웠던 심환지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편지를 보냈다. 그는 자신의 건강 상태 같은 기밀도 편지 첫머리에 써서 알려줘 심환지에게 그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보여 주려 했다.

어찰집 연구에 참여한 서울대 백승호 교수는 "정조어찰첩을 보면서 정조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신료들이 자신의 뜻을 몰라줄 때는 안타까워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조는 남인 시파라고 해서 다 옹호한 것도 아니고, 노론 벽파라고 해서 다 배척한 것도 아니다"며 "정조는 당파적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바른 인물을 포섭하고 자기 의도대로 움직이도록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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