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증권사에서 펀드에 가입한 옆자리 동료의 사정은 전혀 달랐다. 재산규모나 수입, 자금운용 계획 등에서 큰 차이가 없는 동료는 A씨보다 한차례 사인을 덜 하고도 주식형펀드 가입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
사정은 이랬다. 은행들이 증권사보다 주식형펀드에 대한 위험도분류를 엄격하게 했던 것이다. 은행들은 주식형펀드에 대해서 초고위험군으로 설정했고 추천 펀드로 해외펀드는 아예 꺼내놓지도 않았다.
은행들의 몸사림과 쏠림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주식형펀드 규모를 2년여 사이 3배(2006년말 46조원, 2008년말 140조원)로 늘려놓는데 혁혁한 역할을 한 은행들이 깡통펀드와 펀드 고객의 항의에 따른 악몽 때문에 펀드를 외면하는 것이다.
반면 은행들이 열을 올리는 곳은 따로 있다. 2006년 말 57조원, 2007년말 46조원이던 MMF(머니마켓펀드)은 지난 5일 113조원으로 늘었다. 기업 부실 심화와 부동산 시장 냉각으로 돈 굴릴 곳이 마땅치 않던 은행이 운용사 상품인 MMF로 돈을 쏟아붓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가계에 자금을 공급해야 할 은행이 MMF에 돈을 못 넣어 안달인 셈이다.
은행은 돈 흐름에 있어 전문가들의 집단이다. 하지만 그들이 쏠림현상을 주도하는 만큼 금융소비자들에게 합리적 판단을 기대하긴 어렵다. 시중의 돈이 은행에서만 맴돌면 돈을 풀어도 소비나 투자를 촉진할 수 없다. 돈가뭄에 거북등같은 자금시장에 은행은 댐이지, 천수답이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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