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바보야, 문제는 내수야"

김관기 변호사 | 2009.02.09 11:40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의 소비는 18%, 고정자산투자는 31% 감소했고 이 때문에 수출 증가에도 불구, '21%의 GDP 감소'를 겪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지난달 보도했다.

일이 벌어진 후의 '깨달음'인지 모르겠지만 미국 등 서방 선진국의 과소비에 의존해 온 우리 경제가 곧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것은 서브프라임 사태 당시 예상할 수 있었다.

선진국의 공황이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 경제위기가 아니라고 강변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군이 포천, 의정부를 돌파해 미아리를 위협할 때까지도 '침략을 격퇴했다'고 발표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도주했던 반세기 전의 역사를 연상케 한다.

이런 사태를 알고 시민들에게 알렸어야 할 그 수많은 경제학 박사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른바 명문대 출신도 아닌 실업자 신분의 한 청년이 위기 상황을 국민들에게 전했다. 자유사회에서 국민은 정부를 비판할 권리가 있다. 환율조작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말로 한 것이든 문서로 한 것이든 방법의 차이에 불과하다. 사소한 부분에 허위가 있다고 한들 전체적으로는 진실이라는 얘기다.

진실을 알렸다고 처벌한다면 '권력이 원하지 않는 것을 언급한 것' 자체가 범죄가 되는 전체주의 체제로 볼 수밖에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서방선진국들은 거품을 빼기 위해 몇 년 동안 저축률을 높여야 하고 따라서 수출 주도형 경제로 성장해 온 아시아 국가들은 오로지 내수를 진작, 살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설파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금융기관에 돈을 푼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돈이 생기는 족족 써 버려 화끈하게 내수를 뒷받침해야 할 개인들은 가계 빚에 쪼들리는 상황이다. 상당수 기업들은 당장의 운영자금이 급해 대출을 받지만 이 돈은 곧바로 임금과 이자 등 요소비용으로 사라져 버린다.


살만한 부유층과 중산층은 나라의 장래를 믿지 못하겠다며 돈이 생겨도 쓰지 않고 있다. 사회안전망은 고사하고 교육과 의료 같은 인프라가 불충분하다 보니 서민 역시 허리띠를 졸라매기는 마찬가지다. 우량기업 또한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현금자산을 축적하고 있다.

투자할 곳을 못 찾아 헤매는 MMF자금이 사상최대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금융기관에 돈이 몰리는 것은 누구에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만을 부추길 수 있고 원화 가치 하락 예상을 심화시켜 외환 쪽 불안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이제는 과격한 처방이 필요한 때다. 가계부채가 문제라면, 그것이 장애가 되지 않게 하면 된다. 노예적 속박으로 작용하는 개인 채무를 파산제도를 통해 덜어주고 의료와 교육을 확충해야 한다. 지금의 소비가 장래의 비극이 되지 않고, 자식을 갖는 것이 비싼 내구소비재를 구입하는 것처럼 부담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기업의 재무구조가 문제라면 채권의 순위와 금액에 따라 지배구조를 변경, 대차대조표 대변을 새롭게 쓰는 조정방식이 활성화 돼야 한다. 공격적으로 운영되는 파산제도 대신 금융기관 주도의 '예방적 워크아웃'제도를 활성화시키고 경제적 실패를 내부화 해 공적 자금의 사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 같은 처방에 대해 "무책임한 채무자를 용서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난하고 힘든 자의 도덕적 타락만을 걱정해야 하는 걸까. 공적 자금의 투입은 사정이 나은 부자와 넉넉한 자의 도덕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부자들의 도덕은 걱정하지 않고 하루하루가 힘든 서민들의 도덕만을 강조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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