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와인 컬렉션만 봐도 대충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신 사장이 자신의 셀러(Cellar)에 소장하고 있는 와인은 페트뤼스(PETRUS 1990년), 샤또 오브리옹(Chateau Haut-Brion 1982년), 로마네 콩티 라타쉬(DRC La-Tache 2002년), 바타르 몽라셰(Batard Montrachet 2001년) 등 이른바 명품들이 즐비하다. 이쯤 되면 그가 "그냥 즐겨 마신다"는 와인 애호가 수준 이상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와인은 그 존재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입니다." 지난 4일 서울 삼청동에 소재한 와인 레스토랑, 두가헌에서 만난 신용일 사장은 "와인에 푹 빠진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랑팔레(Grand Palais, 독일 슈피겔라우사의 와인잔)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렇게 답했다. 소년이 첫사랑을 고백하듯 조심조심.
낮 설고 외로운 타지생활 때문이었을까. 당시 30세였던 그는 와인과의 연애에 푹 빠졌다고 한다. 그는 "와인을 통해 보다 쉽게 타국의 문화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었다. 나에게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사람과 문화를 잇는 매개체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첫사랑이 그렇듯 와인과의 연애도 오래가지 못했다. 5년간 영국 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이후 와인은 옛 추억으로 조금씩 멀어져 갔다.
"한국에 돌아오니 와인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당시만 해도 와인은 대중적이지 않았고, 일반인에겐 값비싼 사치품에 가까웠으니까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졌죠."
그랬던 그가 와인과 다시 운명적인 만남을 시작한 것은 도이치자산운용의 CEO가 된 2003년부터다. 도이치뱅크그룹은 매년 전 세계 VVIP들을 대상으로 도이치뱅크 행사를 개최하는데 그 행사가 다름 아닌 와인 시음회. 그에게 세계 각국의 명품 와인을 무료로 시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와인 애호가 단계를 넘어 마니아가 됐다.
또 다시 와인에 푹 빠진 그는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와인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꼭 수집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투자가 직업인 자산운용사 CEO인 만큼 상당수는 투자차원에서 사들였다.
"와인 시음회 행사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것은 매년 그 행사비용이 증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숫자의 같은 와인으로 행사를 진행해도 매년 비용이 증가했죠. 시간이 경과할수록 수요대비 공급부족으로 와인의 가치가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투자자산으로도 제격인 셈이죠."
에피소드 하나. 2005년 어느 날 그에게 앙프리뫼(En-Primeur, 병입이전 상태의 와인)를 싸게 대량 구매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와인업계에서 2005년산 와인은 지난 반세기 중 최고의 빈티지로 여겨진다. 그만큼 값도 비싸다. 2005년산 앙프리뫼가 와인 병에 담기는 순간 그 값어치는 1.5배 가까이 뛰는 것이 보통. 하지만 신 사장은 그 흔치 않은 기회를 '직업병' 때문에 날려 버렸다. 재테크는 분산투자가 최고라는 인식 때문에 대량 구매를 포기하고 말았던 것. 그는 "이미 지나간 기회지만 그 때만 생각하면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초보자들도 쉽게 와인의 깊고 오묘한 맛을 즐길 수 있을까. 신 사장은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이 있는 곳에서 와인을 즐길 것을 권했다. "무엇이든 즐거워야 오래가고 숙달되는 법이죠. 와인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지인들과 좋은 와인 레스토랑을 자주 찾는 것도 이 때문이죠. 추천할 만한 곳이요? 저는 여기 두가헌과 함께 삼청동의 르 쁘티 끄루, 남산의 라쿠치나, 청담동의 팔레 드 고몽, 미 피아체, 뚜또 베네 등을 자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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