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통법 시행, 재테크 풍속 어떻게 바뀔까?

머니투데이 정영화 기자 | 2009.02.04 12:06

은행 등 단순 상품판매보다 재무설계 초점둘 듯

강렬하게 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해 6월. 서울 강북에 사는 30대 주부 A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K은행 창구를 찾았다.

이마에 구슬땀이 흘러내렸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3년 만기 적금을 찾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22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 손에 쥐어졌다. 200만원은 여윳돈으로 놔두고 2000만원을 어디에 굴려야 할지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K은행을 찾자 창구직원이 A씨를 VIP룸으로 데려갔다. A씨는 난생 처음 VIP룸이란 곳을 가게 되자 기대가 부풀었다. 거기 있으면 돈이 되는 많은 정보가 있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 곳에는 차장 직함을 갖고 있는 직원이 한명 있었다.

"2000만원으로 재테크할 곳을 찾는다고요?"
"네, 정기예금을 들어야 할지, 펀드에 가입해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당연히 주식형 펀드를 들어야죠. 저희 은행에서 판매하는 OO주식형 펀드가 인기입니다."

"원금이 보장되나요? 수익률은 어떤가요?"
"원금이 보장되면 대부분 수익률이 별로에요. 이왕이면 수익률이 높은 펀드가 좋은 거 아니에요? 주가는 계속 올라갈 거고 주식형펀드가 당연히 최고죠."
"주가가 계속 올라 간다는 보장이 있나요?"

지점 차장은 자신이 권해준 상품에 대해 고객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자 약간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의 말투에는 '감히 전문가의 의견에 태클을 걸어?'하는 멸시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A씨는 주식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종합주가지수가 1600대인 주식시장이 더 이상 오를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회의가 있었다.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던 A씨는 원금보장이 안 되는 주식형펀드에 가입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차장은 계속해서 A씨에게 특정 펀드를 권유했다. A씨는 결국 기분이 나빠져서 은행 지점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묻지마'식 펀드가입 역사 속으로

지금으로부터 불과 반년 전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주식시장이 호황이었기에 너도 나도 펀드 가입 열풍이 거셌는데 여기에는 창구직원들의 강매도 한몫했다.

정기예금을 들러 갔다가도 은행 창구직원의 권유로 잘 알지도 못하는 펀드에 가입하는 고객들이 많았다. 무조건 수익률이 좋다는 말에 현혹돼 위험도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가입하는 '묻지마'식 펀드투자가 성행했다.

이제는 이와 같은 풍경이 역사의 현장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4일부터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에서 투자자 보호규정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펀드나 투자상품에 가입할 때 그 절차가 까다로워진다. 금융투자협회 '표준투자권유준칙'에 따라 6단계의 판매 절차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위험도가 높은 파생상품의 경우 가입이 매우 까다로워진다. 나이가 만 65세 이상이고 파생상품 투자 경험이 1년 미만이라면 아예 가입자체가 안 되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들이 가입할 수 있는 파생상품은 원금보장형 ELS(특정 개별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유가증권) 정도다.

◆원한다고 아무 펀드나 가입할 수 없어

투자성향에 맞게 상품을 권유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고객이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펀드에 가입할 수 없게 된다. 만약 자신의 투자성향이 '안정형 혹은 안정추구형'으로 분류되었는데도 고위험 상품에 가입하려 한다면 '모든 위험은 본인이 감수한다'는 내용의 확인서에 서명해야 한다.


은행이나 증권사 지점에 찾아가 펀드에 가입하려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자신의 투자성향을 분석하기 위한 설문지도 작성해야 하고, 창구직원의 설명도 훨씬 많아진다. 이렇게 되면 재테크 풍속도도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변화될 전망이다. 즉 단순한 상품 가입보다는 포트폴리오 구성을 통한 자산 배분 식으로 전환될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영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제는 재테크를 할 때 개별 상품 위주에서 벗어나 그 사람의 성향이나 인생 목표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바뀔 전망"이라고 말했다. 즉 은행이나 증권사 지점이 재무설계회사처럼 고객의 인생 목표에 맞는 포트폴리오 구성 등 컨설팅을 점진적으로 강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2010년 변화될 은행 지점 가상 풍경도

이와 같은 전망을 바탕으로 가상으로 꾸며본 내년 은행 지점의 풍경은 이러하다.

"1000만원으로 펀드에 가입하고 싶은 데요. 요즘 OO펀드가 아주 수익률이 좋다고 들었는데, 그걸로 들어주세요."
"자, 고객님 일단 여기에 앉아보시고 제 설명을 들으시죠. 1000만원을 어디에 쓰려고 하시는 거죠?"
"그건 왜 묻는 거죠?"

"어떤 목적으로 이 돈을 불리려 하는지 먼저 알아야 그에 맞게 상품을 추천해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 고객님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짜드릴 수가 있습니다."
"5년 후 아이들 대학 등록금을 내는 데 쓰려고 합니다."
"그렇군요. 5년 만기 상품은 정기예금부터 펀드, 보험까지 다양합니다. 고객님이 어떤 투자성향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에 맞는 상품을 추천해줄 테니 먼저 투자자 정보 확인서를 작성해 주십시오."

"여기 원하신 설문지 다 작성했습니다."
"고객님의 성향은 안정추구형으로 나왔습니다. 그에 맞는 상품으로는 원금보장형 적립식 펀드와 채권형 펀드가 있습니다. 정기예금과 비슷한 보험상품도 있고요. 여기 5가지 상품이 있으니 선택해보세요. 꼭 한 가지만 드실 필요는 없어요. 2개 정도 분산 투자하시는 것이 좋으실 거에요. 필요하시면 제가 직접 포트폴리오를 짜드릴 수도 있어요."

"근데 아까 말씀드린 OO펀드 가입은 안되나요?"
"그건 고객님의 성향에 맞지 않고 위험도가 높은 상품입니다. 저희는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 고객님이 그것을 들고 싶으시다면 모든 손실의 책임은 고객님이 지신다는 확인서를 쓰셔야 합니다."
"아, 그렇군요."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낯선 풍경이지만 우리에게 이러한 풍경이 익숙해질 날도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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