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에 엉덩이 붙일 시간도 없어요"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 2009.02.02 08:18

[구조조정 어디까지 왔나]야근, 주말출근… 잇단 강행군에 파김치

은행권의 구조조정 직원들은 요즈음 파김치가 돼 있다. 쉴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 수북이 쌓여가는 서류, 그리고 계속되는 회의에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평일 야근은 기본이고, 주말에도 출근할 때가 허다하다.

기업의 신용위험등급을 평가할 때는 미래가치를 놓고 밤새워 고민했다. '살리기'에 초점을 맞춘 탓에 등급간 경계선에 걸린 기업들을 판단하기가 간단치 않았다. 시간도 촉박해 다른 채권 금융기관과 의견을 조율하는데 애를 먹었다.

1차 구조조정 대상 선정 후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후속 조치 등을 위한 내부 회의와 보고, 그리고 다른 채권금융기관과 회의로 자리에 앉아 있을 시간조차 없다.

인력 증원도 이뤄지지 않았다.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는 일인 만큼 여신관리나 리스크관리에 정통한 소수 직원만 투입된다. 중요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은 있지만 심적·정신적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안 유지도 큰 부담이 된다. 다루는 서류나 회의가 대부분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민감한 내용이어서 매일 얼굴을 맞대는 동료에게까지 비밀이 많다. 유관부서간 오해도 종종 생긴다. A은행 관계자는 "집에 가서도 현안에 대해 한 마디도 할 수 없다"며 "혹시라도 말이 잘못 나갈 경우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수 있어 회사일은 아예 입을 닫고 산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뿐 아니라 다른 채권금융기관과 의견조율도 간단치 않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분류된 한 건설사는 "왜 C등급이냐"고 강하게 반발하며 채권단 공동관리(워크아웃)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아 채권금융기관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 회사도 워크아웃을 신청했지만 이 과정에서 채권금융기관들은 설득에 진땀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B은행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다수의 이해당사자간 조정과 협의를 통해 진행된다"며 "이 과정에서 긴장과 갈등, 그리고 타협 등이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방안을 마련해도 받아들이는 측이 불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강행군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C은행 관계자는 "체력이 많이 떨어진 느낌"이라며 "이제 구조조정의 막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솔직히 겁이 난다"고 말했다.

감독당국 역시 계속되는 야근과 회의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다. 얼마전 발생한 안철식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과로사가 남의 일은 아니라는 분위기다. 구조조정이 더디다는 언론의 질타에 이견을 조율해달라는 은행권의 요구가 갈수록 부담스러워진다.

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는 "기업재무개선단이 꾸려진 뒤 오전 8시 이전에 출근해 밤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고 있다"며 "주말은 물론 연휴에도 제대로 쉬지 못해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 사정이 외환위기 때와 크게 달라져 구조조정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어 어려움이 크다"며 "자칫 새로운 변수가 나타나 구조조정이 장기화하지 않을까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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