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에 저항하다 개발자 품으로 들어간 맛집들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 2009.02.09 11:05

[머니위크]맛집타운 된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종로구 청진동 도시환경정비구역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6지구에 자리한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이 수혜를 입고 있다. 특히 청진동 일대의 맛집으로 명성을 떨치던 유명 음식점들이 속속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으로 입점하면서 종로의 맛집 지도가 바뀌고 있다.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던 청진동 서민들의 음식점들이 하나 둘씩 개발의 유혹에 넘어갔지만 일부는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며 도시민들의 향수를 자극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서울시 건축위원회가 청진 2, 3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계획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광화문 교보빌딩 뒤편의 맛집도 자리를 내줘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지역 사수’를 외치며 개발업자와 전면전을 벌였던 청진동 일대 맛집들이 개발의 최전방에 선 시행사의 건물에 입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인근지역으로 옮기자니 또다시 된서리를 맞을 게 뻔한데다 멀리 움직일 경우 단골손님이 떠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주변 상인들은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이삿짐을 옮기고 있다.

1월 말까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에 입점했거나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인 맛집은 줄잡아 10여곳이다. 지난해 여름 청진동 해장국 골목의 맏형 격인 ‘청진옥’을 비롯해, 전통 족발집 ‘장원집’, 메밀국수로 유명한 ‘미진’, 대표 순두부 맛집인 ‘강촌’과 보신탕으로 유명한 ‘욕쟁이 할머니집’ 등이 이 빌딩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또 낙지 맛이 일품인 ‘서린낙지’와 ‘이조’, ‘한마루’, ‘청일집’, ‘실비집’ 등도 이 빌딩에서 영업을 막 시작했거나 인테리어 공사에 한창이다.

교보생명 뒷골목 일대가 철거됨에 따라 이 지역의 숨어있는 맛집들도 가까운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을 선택하고 있어 맛집 러시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르메이에르 종로 공실 줄어

서울시 종로구 청진 도시환경정비구역 제6지구에 해당하는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은 지하 7층에 지상 20층 규모로 연면적만 9만㎡를 넘는다. 종로구청길 오른편으로 SK그룹 본사와 마주보고 있는 도심 내에서 제법 규모 있는 건물이다.

지난 겨울 찾아간 종로타운은 공실이 두드러졌다. 인근 중개업소에 따르면 종로상권의 노른자위에 입지한 덕택에 상대적으로 공실이 낮은 편이지만 지상층은 약 20%, 지하층은 80%의 공실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1월 말 찾은 종로 르메이에르의 공실은 크게 줄었다. 현재 비어있는 상가자리도 이미 계약이 끝나고 입주일자 조정만 남아있다는 것이 인근 중개업소의 전언이다.

르메이에르 측이 타운 내 임대가격이나 임대수준에 대해 공개하지 않고 있어 확실한 통계는 낼 수 없다. 다만 지역 중개업소에 따르면 지난해 이맘때보다 빈자리가 절반 이상 줄었다.

남은 공실도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청진동 일대에서 철거라는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이곳을 제외하면 사실상 없기 때문에 공실 해결은 시간문제가 됐다.


◆모인 맛집들 "비용 때문에…"

청진동 해장국 골목의 터줏대감 청진옥은 지난해 8월 이 빌딩 1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진옥의 4대 주인인 최준용(42) 씨는 당초 북창동 인근이나 강남 진출을 모색했었다. 르메이에르 빌딩으로 가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3대를 거친 단골손님부터 갓 입사한 인근 사원까지 먼 이전을 극구 만류했다. 주변 지인들도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는 것을 추천하는 통에 그는 결국 이 지역의 유일한 자리인 르메이에르로 이전을 하게 됐다.

그 대신 등 맞대고 움츠리던 좌석은 여유가 생겼고 주변 환경은 깨끗해졌다. 물론 옛 추억을 떠올리는 단골에게는 어색한 옷을 입은 듯 불편한 자리이기도 하다. 최씨는 “깨끗하고 맛도 똑같다고 좋아하는 분도 있고,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며 훈계하는 분도 있다”면서 “아무래도 편안하다고 하는 분들은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게 아닌가 싶다”고 아쉬워했다.

청진옥은 이전과 동시에 10년째 고수한 5000원짜리 해장국 가격을 6000원으로 올려 받았다. 새로 옮긴 점포의 세가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전에는 땅과 음식점, 뒤편의 기숙사까지 모두 청진옥 소유였지만 지금은 세입자 처지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2개 층으로 구조변경을 했다가 종로구로부터 건축법 위반이라며 철거명령까지 받은 터라 더더욱 곤궁한 처지에 놓였다.

르메이에르로 옮기고 나서 가격을 올리기는 메밀전문점 미진도 마찬가지다. 교보타워 뒤편의 맛집으로 널리 알려진 미진은 1954년 시작해 5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전통 음식점이다.

지난해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에 미리 분점형태로 운영하면서 9년 만에 가격을 올렸다. 임대료가 피맛골에 있을 때보다 두배가 들기 때문에 가격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족발요리로 유명한 장원집도 미진과 같은 이유로 이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자리를 옮기면서 고객의 연령층도 바뀌기 시작했다. 왕년의 절대적인 지지자였던 50대 이상의 단골은 줄어든 반면 점심시간 회사원 손님이 늘어났다.

다만 예전의 장소보다 몇배가 드는 세 때문에 가격 인상을 고심하고 있다. 장원집의 주인인 김민자(51) 씨는 “예전 같으면 월세가 27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700만원이나 한다”면서 “관리비와 각종 세금 부담도 늘어나면서 월 1000만원에 육박하는 고정비용이 나간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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