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빌려주고 속앓는 '90조 社債시장'

머니투데이 전병윤 기자 | 2009.02.02 09:21

[투자자 보호의 사각, 회사채]<상> 법도 관행도 발행사편의 위주

 #사례 1 : 지난해 12월 금호렌터카가 발행한 회사채 1000억원을 보유했던 개인 투자자와 판매사들이 원금 회수를 위해 회사를 상대로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다. 금호렌터카가 핵심사업을 계열사인 대한통운에게 넘긴 후 껍데기 회사로 돌변했기 때문. 그 해 2월 채권을 발행할 당시 금호렌터카의 순자산은 1461억원이었지만 양수도 계약 후 마이너스(-)로 뒤바뀌었다. 회사측의 무성의한 대응이 이어지자 원금 회수를 위해 소송이란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 사례 2 : 2007년3월 동부한농 회사채 2100억원어치를 보유한 투자자와 판매사가 동부한농과 동부일렉트로닉스(현 동부하이텍)과의 합병에 반대하며 시위에 나섰다. 당시 투자적격등급이던 동부한농이 투자부적격등급인 동부 일렉트로닉스가 합병하면 회사채신용등급이 떨어져 손실이 예상된다며 회사채를 조기상환하거나 그에 준하는 담보를 제공하라는 것이 요구였다.

이에 대해 동부측에서`할테면 해봐라'는 식의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며 동부한농 투자자들은 사채권자 집회 개최 등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이후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동부그룹이 집회전 1710억원의 담보 제공 의사를 미리 밝혀 사채권자들이 합병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것으로 "얘기가 잘됐다"
 
 회사채에 투자했다 당연한 권리조차 챙기지 못하고 낭패를 보는 일이 적지않다. 돈을 빌려간 사람이 `기다리라'는 식으로 배짱을 내밀고 돈을 빌려준 사람은 되레 전전긍긍하며 아쉬운 소리를 해야 되는 모양새다. 획기적인 선진법이라할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이 코앞에 와있고 순수 회사채 발행잔액만 90조원이 넘는 21세기 한국 자본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회사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있을때 주식투자자에게는 주주총회다 주식매수 청구권이다 의사를 꼬박꼬박 묻고 있다. 그러나 회사채는 그것이 제대로 안된다. 채권을 발행한 기업은 경영상 중요한 변화가 생겨도 이를 채권자들에게 알려주지 않을 뿐 아니라 상환 요구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인 경우가 다반사다.

금호렌터카처럼 핵심 사업 영업양수도 계약은 사실상 인수·합병(M&A)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M&A와 달리 채권자로부터는 동의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 법도 관행도 회사채 투자자 이해는 뒷전으로 밀어나 있다. 문제제기는 여러번 있었지만 기업 자금조달 편의라는 명제에 막혀 빛을 보지 못했다.


 기업은 회사채를 발행할 때 발행 예정금액과 이자율, 만기일 등이 적힌 '유가증권신고서'만 금융감독원에 간단하게 제출하면 된다. 회사채 발행후 보유자 이익에 영향을 줄 만한 사안에 대해 의사를 묻도록 하는 장치도 없다. 채권자들에게는 현재 재무상황을 열람할 법적 권리 조차 없다. 우리나라의 회사채는 모두 발행사 편의위주로 돼있는 것이다.

 이같은 구조는 선진국과 대조된다. 미국의 경우 채권발행계약서를 작성할 때 갖가지 '커버넌트(제한조항)'를 둔다. 예컨대 기업의 부채비율이 OO%를 넘거나 신용등급이 일정 수준으로 떨어지면 조기상환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거나 채권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담보부채권의 발행 등을 제한한다.

또 채권 발행회사는 계약서의 이행 실적을 회사와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가 의견을 담아 정기적으로 감독당국과 채권수탁회사에 보고해야 된다.

 우리나라에서 우량 회사채라고 해도 공모펀드 등 투자수요의 저변이 넓지 않다. 지난해 9월말 현재 한국은행 자금순환표상 외국인과 개인의 회사채보유비중은 0.3% 0.1%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엉성한 투자자보호도 한몫한다는 지적이다. 회사채투자자 보호에 대해 선진국수준은 안되더라도 지금처럼 내몰라라 식은 안된다는 지적도 이래서 나온다.

길기모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위원은 "기업이 채권자의 이익을 심각히 침해될 경영 활동을 하거나 만기 상환을 못 했을 경우 채권자들이 원금 상환을 위해 기업을 압박할 실질적인 수단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회사채 시장을 살리려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면에서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베스트 클릭

  1. 1 "네 남편이 나 사랑한대" 친구의 말…두 달 만에 끝난 '불같은' 사랑 [이혼챗봇]
  2. 2 '6만원→1만6천원' 주가 뚝…잘나가던 이 회사에 무슨 일이
  3. 3 노동교화형은 커녕…'신유빈과 셀카' 북한 탁구 선수들 '깜짝근황'
  4. 4 "바닥엔 바퀴벌레 수천마리…죽은 개들 쏟아져" 가정집서 무슨 일이
  5. 5 "곽튜브가 친구 물건 훔쳐" 학폭 이유 반전(?)…동창 폭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