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의 고객 갈아타기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 2009.01.21 09:38

[컨설팅의 명암]①대우조선 놓고 GS·두산·한화 잇딴 자문 무리수

이 기사는 01월20일(13:29)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11월초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업체 베인&컴퍼니는 한화그룹으로부터 매혹적인 제안을 받았다.

대우조선해양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한화가 '인수 후 통합(PMI)'에 관한 컨설팅 자문을 의뢰해왔다. 약 1년 반 동안 포스코의 인수 전략을 담당했던 베인의 수뇌부는 흔들렸다. 그동안의 자문 노하우를 활용할 경우 수십억원의 자문 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화의 제안에는 조건이 걸려 있었다. 포스코에 투입됐던 파트너급 인사와 복수의 어소시어츠 컨설턴트들을 그대로 활용하고 싶다는 요구였다. 포스코가 대우조선 인수를 대비해 마련했던 장기 육성계획을 모두 물려받을 심산이었다. 베인의 파트너들이 수차례의 임시 회의와 내부 격론 끝에 내린 결론은 '수용불가'였다.

포스코가 이미 대우조선 인수 자격을 박탈당한 마당에 베인이 법적으로 문제될 소지는 없었다. 하지만 단기적인 수수료 수익보다는 고객과의 신뢰를 장기적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컨설팅 업계가 황금률로 지켜야 하는 고객비밀유지 의무에 충실한 결정이었다.

흥미로운 사건은 그 이후에 벌어졌다. 베인에게 거절당한 한화는 업계 1위라고 자부하는 맥킨지와 계약을 체결했다. 컨설팅 업계는 술렁거렸다. 맥킨지의 선택이 불문율을 무시한 결정으로 이해됐기 때문이다.

맥킨지는 한화와 자문 계약을 맺으면서 대우조선해양의 후보 가운데 총 3곳의 인수 후보를 거쳤다. 당초 2007년 상반기 맥킨지는 3개월 동안 파트너급 인력을 동원해 GS그룹의 대우조선 인수 전략을 마련했다. GS는 대우조선이 매물로 나오기 2년 전인 2006년부터 인수 전략을 구상했고 맥킨지가 그 씽크탱크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맥킨지는 GS와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관계를 정리했다. 이후 지난해 3월 말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매각을 공식화하자 전부터 관계가 돈독했던 두산으로 향했다.

두산이 대우조선 인수를 희망하며 맥킨지에 러브콜을 보내자, GS에 내놨던 컨설팅 노하우를 활용해 곧바로 경쟁사를 택한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당시 대우조선 인수작업을 지속하면서 맥킨지와 계약 연장을 염두에 뒀던 GS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GS 내부에서는 맥킨지에 소송을 하자는 의견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법률자문 결과 기존 맥킨지와 계약 조건에 자문 기간과 관계없는 쌍방대리 금지문구를 포함하지 않아 소송이 무효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대우조선 인수 태스크포스를 이끌던 실무 임원은 차선책으로 다른 컨설팅 기업인 모니터와 계약을 체결했지만 한동안 분을 참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맥킨지의 모럴 헤저드에 관한 논란은 몇 달만에 잦아들었다. 맥킨지를 고용한 두산이 내부 문제로 대우조선 딜을 중도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력 후보이던 포스코가 GS와 컨소시엄 파기 문제로 후보 자격을 박탈당하면서 상황이 또 한번 바뀌었다.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한화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되고 맥킨지가 이 딜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컨설팅 업계는 이 문제가 한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문제는 아니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우선협상자 선발과정에서 뒤져있던 한화가 그동안의 전략적 부재를 만회하기 위해 유력 후보를 대행했던 베인이나 업계 리더라는 맥킨지를 찾은 시도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세 차례나 클라이언트를 바꿔서 자문을 수행한 맥킨지의 행태에 대해서는 두고 두고 말이 나온다. 모 컨설턴트는 "맥킨지가 같은 딜을 세 차례나 수임한 것은 이 업계가 얼마나 혼탁한 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아무리 고객 비밀을 보장한다고 약속을 해도 암묵적으로 인정되는 행동규범(code of conduct)이 지켜지지 않으면 결국은 신뢰를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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