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 위의 머니게임 '계'

머니위크 김성욱 기자 | 2009.01.24 04:09

[머니위크]영화 속 경제이야기/ <걸스카우트>

지난해 11월 초 우리 사회에 심심치 않은 화제를 모은 뉴스 하나가 전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전 세계적 경제불안으로 노심초사하던 서민들에게 이 뉴스는 충분한 ‘안주거리’였다.

바로 강남 부유층을 상대로 한 ‘귀족 계모임’인 다복회의 계주 윤모씨가 도망갔다는 것. 다복회는 2001년 결성된 이후 유명 연예인·교수·의사 등 700~800명의 강남 부유층을 회원으로 최소 1억원에서 수십억원대의 자금을 끌어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복회를 필두로 한마음회, 청솔회 등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귀족 계모임’이 줄줄이 깨지면서 ‘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 아닌 변화가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개봉 시기를 조그만 늦췄다면 흥행에 보다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있다. 바로 <걸스카우트>(감독/ 김상만 출연/ 김선아, 나문희, 이경실, 고준희, 임지은, 박원상, 유태준)다.

지난해 6월에 개봉한 <걸스카우트>는 23만6027명을 동원해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관객동원 면에서 41위를 차지했다. 만약 개봉시기가 11월쯤이었다면 다복회 문제 등으로 인해 관객을 더 동원하지 않았을까.

◆도망간 계주를 찾아 나선 이 시대의 아줌마들

<걸스카우트>는 떼인 곗돈을 찾기 위해 한데 뭉친 여인들의 이야기다.

업그레이드 인생을 꿈꾸며 주식에서 옷가게까지 틈나는 대로 재테크를 꾀하지만 손대는 족족 말아먹어 생활계의 마이너스 손으로 통하는 30대 이혼녀 미경(김선아 분), 손자 재롱 볼 나이에 백수 아들 뒷바라지 하느라 동네마트에서 일하는 60대 할머니 이만(나문희 분), 남편을 저 세상 보내고 아들 둘 키우느라 인형 눈 붙이기부터 돈 되는 일은 일단 하고 보는 억척 살림꾼 40대 봉순(이경실 분), 폼나는 인생을 꿈꾸지만 늘어나는 빚으로 인해 채권추심에 시달리는 20대 은지(고준희 분). 이들은 봉천 3동의 한 소형 아파트 단지에 모여 살면서 각각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동네 미장원 원장 성혜란(임지은)의 주도하에 계를 한다. 어느날 성 원장은 그녀들의 피 같은 곗돈 2억여원을 빼먹고 달아난다.

급한 마음에 용의자의 은신처를 이 잡듯 뒤지던 미경은 사건 해결에 핵심이 될 만한 결정적 단서, 성 원장이 미사리에 있는 ‘물안개’라는 까페를 자주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경은 억울한 마음에 밤잠을 설치던 이만, 봉순, 그리고 언니들을 돕겠다고 흔쾌히 나선 은지와 함께 미사리 근처 까페에 잠복하며 추적을 감행한다.

성 원장이 나타나지 않아 자포자기 하며 회포를 풀던 중 나타난 성 원장을 보고 미경 일행은 우여곡절 끝에 그를 잡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성 원장은 동업자인 민홍기(박원상 분)가 사기분양으로 빼돌린 제1종 국민주택채권 22억원어치만 갖고 있을 뿐이다.

민홍기에게 사기를 당한 캐피탈회사의 한 상무(최정우 분)는 해결사인 이종대(류태준 분)에게 민홍기와 채권을 찾아오라고 지시를 내린다. 이종대와 미경 일행은 성 원장과 민홍기를 잡기 위해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아군으로 채권과 돈을 찾아 이들과 추격전을 진행한다.

◆계, 고위험 따르는 비과세ㆍ고수익 수단

계(契)는 품앗이, 두레와 함께 우리 민족의 협동심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계는 주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거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전래의 협동 조직을 일컫는다. 이러한 계의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지금은 <걸스카우트>에서처럼 목돈을 만들기 위한 재테크 수단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계의 가장 큰 장점(?)은 세금이 없다는 점이다. 계원들 간에 이뤄지기 때문에 정부나 금융기관 등에 수수료는 물론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또 다른 장점은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후순위로 곗돈을 탄다는 전제가 따른다. 그러나 선수위로 곗돈을 타간 계원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게 된다.

계는 크게 순번계와 낙찰계로 구분된다. 순번계는 계원들이 좀 더 돈이 급한 사람이 먼저 가져가는 식으로 곗돈을 가져가는 순서를 미리 정하는 계다. 선순위 계원들은 순번에 따라 미리 정한 이자만큼을 공제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이자는 후순위 계원들에게 지급된다.

낙찰계는 계원들이 타갈 곗돈이나 이자를 적어 내서 가장 적은 금액을 타가겠다고 적어낸 계원부터 곗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즉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부터 작은 돈을 써내 먼저 타가는 방식이다.

낙찰계든 순번계든 결국 선순위로 타 가는 계원들은 선이자를 지급하고 대출을 받는 것과 동일하다. 선순위자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는 셈이기는 하지만, 급하게 돈을 당겨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무조건 불리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계는 이처럼 비과세와 고수익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고수익에는 당연히 고위험이 따른다. 바로 ‘계주 리스크’와 ‘계원 리스크’다.

계주 리스크는 <걸스카우트>의 성 원장처럼 계원들이 불입한 곗돈을 유용 또는 가로챌 위험이다. <걸스카우트>에서 이만이 한 말처럼 “돈이 눈앞에 있는데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인 만큼 큰돈을 관리하는 계주가 스스로 급하거나 또는 욕심이 생기면 딴 짓에 대한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계원 리스크는 선순위로 곗돈을 받아간 계원이 돈을 받아간 이후 곗돈 불입을 중단하는 위험이다. 선순위로 곗돈을 받아가는 것은 사채보다 더한 이자를 지불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럼에도 불구 선순위로 돈을 받아가는 것은 그만큼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환경에 있다는 말도 된다. 따라서 곗돈 불입 중단의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나친 욕심은 모자람만 못하다

<걸스카우트>에서 악당으로 등장하지만, 결론에서는 악당이 아닌 존재가 되는 해결사 이종대. 그는 영화 초반에는 은지의 빚을 받아내기 위해 폭력도 불사하는 지독한 악당으로 나온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그의 목적은 한 상무가 의뢰한 채권회수와 민홍기를 잡는 것이다.

꽁돈을 노리고 미경 등과 합류한 은지는 빚을 갚기 위해 미경 일행과 성 원장을 속이고 22억원어치의 채권을 빼돌린다. 은지는 이종대를 찾아가 채권으로 빚을 탕감하려 했으나 결국 빼앗기게 되고 대신 곗돈 2억여원을 받고 돌아온다. 은지에게 채권을 받고 곗돈을 돌려주면서 이종대는 한마디 한다.

“자기 것 아닌데 자기 것인 척하는 것 보니까 기분이 좀 그렇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논어>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말로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파생(?)된 단어가 ‘과욕불급(過慾不及)’이다. 지나친 욕심은 모자람만 못하다. ‘돈’,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하다. 그러나 남의 것을 내 것처럼 생각하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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