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고객 무서워 함부로 펀드 못팔아요"

머니투데이 박성희 기자 | 2009.01.16 16:40

[한국형 IB성공의 길] (3)불완전 판매를 넘자

# 대구광역시에 사는 K씨(53)는 지난 2006년 11월 역외펀드에 가입하면서 맺은 선물환계약으로 원금 2300만원 중 840만원만 강제 환매 당했다. "환율이 상승할 때 발생할 피해에 대해선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환헤지 계약을 맺었다"는 게 K씨의 주장이다. 그는 "분명 본사에서 각 지점에 대외비의 지침서를 내려보냈고 이에 따라 선물환에 무지한 판매사 직원들이 역외펀드에 선물환계약을 끼워 판 것"이라며 "지난 한 달간 소송을 준비하며 개인적으로 선물환 공부를 해 보니 그리 쉽게 권유할 만한 상품이 아니더라"고 말했다.

# 지난 2년간 은행 창구에서 펀드를 판매해 온 H씨(34)는 요즘 펀드 상담을 오는 고객들이 반갑지만은 않다. 양복 주머니에 녹음기를 숨기고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녹취하는 고객이 있다는 걸 안 뒤부터다. H씨는 "예전엔 펀드 가입자에게 적극적으로 상품을 권했지만 지금은 '불완전판매'로 문제될까 무서워 고객이 물어보는 것 외엔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한다는 펀드 시장이 싸늘하게 식었다. 증시 급락으로 손실난 펀드가 속출한 이유도 있지만 마냥 믿고 투자하기엔 '불완전판매'의 후유증이 크기 때문이다.

불완전판매가 도마 위에 오른 건 '우리파워인컴파생상품펀드' 사건이 터지면서부터다.

2005년 11월 출시 당시 1700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으며 큰 인기를 끌었던 이 펀드는 지난 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계기로 원금 대부분을 날렸다. 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이었지만 당시 은행 직원은 투자자들에게 '원금 손실 가능성은 대한민국 국채가 부도나는 확률보다 낮다'며 투자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설명서도 없었고 투자 위험성도 고지되지 않았다.

지난 11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우리은행에 불완전판매 책임이 있다며 손실금액의 50%를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 이후 금감원에 접수된 분쟁조정 신청 건수는 하루 평균 90건을 넘었고, 인터넷에 '펀드 소송'과 관련된 카페가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개인 키코(KIKO)'로 불리는 역외펀드 선물환계약도 불완전 판매 시비 속에 소송 초읽기에 들어갔다. 펀드 손실로 원금이 쪼그라들자 투자자들은 환헤지 발생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할 처지였다.

2007년 펀드 열풍의 정점에 있었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사이트펀드'도 '불완전판매' 문제가 거론됐다. 미래에셋이 펀드 가입 당시 설명했던 것과 달리 중국 증시에 '몰빵'해 손실이 불어났다는 주장이다.

'우리파워인컴파생상품펀드' 외 두 경우는 아직 불완전판매 여부가 밝혀지진 않았으나 이들의 공통점은 판매사나 운용사, 투자자 모두 막대한 손실 가능성을 염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판매사는 과거 고수익을 발판으로 펀드 판매에 열을 올렸고, 운용사는 운용 역량 밖의 상품을 만드는 과욕을 부렸다. 투자자들은 '설마 내 펀드에…'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자산을 지키는 데 안일했다.

비록 원금 손실이라는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긴 했지만 그동안 양적 팽창으로 간과했던 질적 성장에 대한 논의가 부각되면서 국내 펀드 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가 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우재룡 동양종금증권 자산관리컨설팅연구소장은 "믿고 맡기라고 말했던 운용사와 알지 못하고 판매한 판매사, 알아서 수익을 내주겠거니 생각한 투자자 모두의 책임이 크다"며 "투자 문화를 성숙시켜 나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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