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확충펀드' 은행판 대주단 되나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서명훈 기자 | 2009.01.14 07:29

당국 "필요한 은행만…", 은행권 부실은행 낙인 우려

은행 '자본확충펀드'를 놓고 말이 많다. 경기침체로 부실채권이 늘어나 은행까지 동반 부실화되는 것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정작 은행들은 손사래를 치고 있다.

이렇다보니 돈을 주겠다는 정부가 자금지원을 받는 은행에 읍소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서 자본확충펀드를 둘러싼 오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필요한 은행만 갖다 써라"= 자본확충펀드를 둘러싼 가장 큰 오해는 '일괄신청'이다. 모든 은행이 자본확충펀드의 지원을 받도록 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는 얘기다.

이 같은 추측은 지난해 11월 정부가 은행의 외화 자금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지급보증을 서면서 전 은행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에 기인한다. 당시 일부 외국계 은행은 지급보증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국제 신뢰도를 언급하며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본확충펀드 역시 같은 수순을 밟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 당국 고위 관계자는 "자본확충펀드는 말 그대로 자본 확충이 필요한 은행이 신청하면 자금을 지원하는 구조"라며 "강제적으로 모든 은행이 신청하게 할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본확충펀드 규모를 20조원으로 설정했지만 이를 모두 쓰려는 것도 아니다"며 "앞으로 부실이 얼마나 늘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한도를 모두 소진한다면 다음에 쓸 수 있는 카드는 공적자금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자본확충펀드의 성격이 일종의 구급약 성격이 짙은 만큼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잔고를 남겨놓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자본확충펀드를 당장 자본 확충용으로만 활용하지 말고 해외자금조달에도 활용해야 하는데 그럴 생각이 있는 은행이 없어 보인다"며 아쉬워했다.

◇ 부실은행 낙인·수익률은 어쩌고?= 펀드를 둘러싼 오해를 불러온 것은 시장에 엇갈린 신호를 보낸 금융당국이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부 은행만 참여할 경우 지원을 신청한 은행은 부실은행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일괄 신청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이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힐 것을 우려해 대주단 협약 가입을 기피했던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금융당국 내에서 조차 일괄 신청을 놓고 입장 정리가 이뤄지지 않은 분위기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경영실태평가상 우량은행으로 판단하는 기준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0%"라고 강조하며 은행권에 과감한 구조조정과 중소기업 지원을 독려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은행권에 올해 1월말 까지 BIS비율 12%와 기본자본비율 9%를 맞출 것을 지시한 바 있다. 김 원장은 BIS 비율 12%에 목을 맨 은행들이 실물에 자금을 신속히 공급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확충펀드 정책을 입안한 금융위원회는 김 원장의 발언에 적잖이 곤혹스러워했다는 전언이다. 자본확충펀드는 '펀드'다. 속성상 수익률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전체 20조원 가운데 8조는 민간에서 조달할 계획이라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률이 필요하다. 신청 금액이 너무 적으면 펀드 조성이나 운용에 어려움이 생기게 되고 이는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수익률이 떨어지는 펀드에 시중자금이 들어올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일괄 신청이 발목"= 은행들은 자본확충펀드의 지원을 받으면 정부의 경영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일부 은행은 자체적으로 자본 확충을 했는데 굳이 일괄적으로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냐고 목청을 높인다.

감독당국 조치 후 BIS비율 12%가 사실상 건전성 기준이 돼버렸다. 12% 밑으로 떨어지면 자본확충펀드의 지원을 받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은행들은 우려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임원은 "그동안 정부가 은행들에 자본 확충을 독려한 것은 구조조정에 대비해 손실흡수 능력을 키워놓으라는 얘기였다"며 "개별 은행에 대한 국제 신인도가 있는데 BIS 비율을 높여 흡수 능력을 키운 곳도 일괄적으로 지원을 받으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임원은 "지금은 실물에 발 빠르게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그런데 BIS 비율과 자본확충펀드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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