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과 무한경쟁에 내몰린 '꼬인' 군번

머니투데이 김동하 기자 | 2009.01.14 04:07

[머니위크]수능세대의 ‘재테크 블루스'-1

새 시대의 '꿈나무'로 불리며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새로운 관문 앞에 섰던 수능세대. 전례 없는 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그들을 기다린 건 상대평가와 고시열풍, 유학광풍이었다.

학창시절을 마칠 무렵에는 IMF외환위기와 취업전쟁이 앞을 가로막았고, ‘비정규직’이란 단어는 어느새 수능세대들에게 익숙한 단어가 됐다.

온갖 경쟁을 헤치고 자립을 시작할 무렵에는 ‘강남 불패’의 자산버블이 부풀어 올랐다. 극심한 양극화 속에서 월급으로 집을 사는 일은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강남 신화'에 동참할 수 없는 많은 수능세대들은 적금 붓듯 적립식펀드에 미래를 맡겼다. 그러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주식시장 폭락과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가는 전 세계적 경제위기가 이어졌다.

한국전쟁 후 '베이비부머'의 그늘 뒤에 가려진 수능 세대. 30대를 향해가면서 민주화의 영웅 386선배들에게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했지만, 지금은 점점 현실정치와 멀어지며 생존에 급급하고 있다.

기업과 전문직 시장, 공무원 사회에서도 위로는 커다란 역삼각형 조직이 짓누르고 있고, 연금은 부모와 형제들을 끊임없이 뒷바라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베이비부머 이후 모든 것이 과잉인 시대. 수능세대는 어떻게 미래를 설계해야 할까.

'수능세대의 재테크 블루스'. 그들의 애환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꿈만 같은 선배들의 푸념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너무 안 해서 그냥 은행에 취직했다."

"고시 공부하기 싫어서 그냥 대기업에 들어갔다."

"놀다 보니 취업준비를 못 했다. 그래서 교수님 추천으로 공단에 취업했다."

대학가에서 만난 선배들. 그들은 우리를 환영하며 이 같은 '낭만적' 푸념들을 늘어놓았다.

수능세대 역시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며 저마다 꿈을 키워갔다. 은행, 공기업, 대기업에 성이 차지 않는 친구들은 고시와 유학으로 끓는 정열을 불살랐다.

그러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수능세대들이 졸업을 준비할 무렵인 1997년. 태국의 바트화 폭락에서 시작된 IMF 외환위기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거쳐 한국으로 번졌다. 한국은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긴급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후 1999년에만 하루 평균 18개의 법인이 부도를 냈고, '세계경영'의 전도사 역할을 하던 대우그룹을 시작으로, 동아건설·한일·거평그룹 등이 줄줄이 파산했다.

◆나라는 환란, 수능세대는 취업란

국가적으로 환란(換亂)이 펼쳐지는 동안, 수능세대들에게는 취업란(亂)이 닥쳤다. 갑자기 '청년실업', '고학력실업'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익숙한 용어가 됐다.

1998년과 1999년 기업들은 명예퇴직과 정리해고 등을 통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취업 새내기들은 합격 후에도 채용취소 통보를 받거나 회사가 돌연 부도를 내고 무너지는 일이 빈발했다.


수능세대들의 희망인 대기업들도 채용문을 닫았다. 매년 4~5월 삼성 현대 LG 대우 등 대기업이 학교를 돌며 수 천 명씩 대규모 그룹 공채를 했지만, 1998년 상반기 신입사원을 뽑은 대기업은 LG그룹 300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1998년 20대 실업자는 57만명으로 1997년의 배를 넘었고, 1999년에도 45만명을 웃돌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외환위기 중인 1999년 6월 전체 실업률은 6.7%였지만, 20대 실업률은 10.3%에 달했다. 2008년 11월 현재도 20대 실업률은 6.6%로 전체 실업률 3.1%의 배를 넘고 있다.

특히 대졸자의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1997년 81.4%이던 대졸이상 경제활동참가율은 1998년 78.9%, 1999년 77.4%로 떨어졌고, 2000년에 77.2%로 사상 최저치로 추락했다. 이후에도 80%를 회복하지 못한 채 2007년 78%에 머물렀다.

◆소수만의 잔치판, 나머지는 아웃사이더

한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세대를 1차 '베이비붐'세대로 꼽는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까지가 2차 베이비붐 세대다.

한국의 인구구조는 인구의 40%에 육박하는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다이아몬드형'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 다이아몬드 구조의 윗삼각형은 수능세대 직전에 끝이 난다. 수능세대는 역삼각형이 시작되는 하단의 상층부에 자리하고 있다. 군대로 말하자면 제대 직전까지 모셔야 할 고참들만 수두룩하고 쫄병들은 줄어드는 '억세게 꼬인 군번'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바로 다음세대인 수능세대에게 취업의 문은 이미 '과잉'이었다. 그나마 취업의 문이 새로 열린 벤처·IT·게임·영화 등 창의적인 업종으로 진출한 경우가 있었지만, 나중까지 승승장구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2000년 이후로는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상당수가 다시 취업전선에 나서야 했다. 수능세대의 선배들 극히 일부만이 벤처 창업자로 살아남아 '소수의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다.

역(逆)삼각형의 시작점에서 직장 선배들의 무게를 짊어지면서, 받쳐줄 후배들은 점점 줄어드는 모습. 삶의 터전인 직장에서 수능세대들은 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강남 유학파에 밀린 토종 공부벌레

1992년 김영삼 정부 출범부터 부르짖은 '세계화'의 기치 속에서 대기업에 대한 선호도는 점점 커져갔다. 법정계열 대신 상경계열이 커트라인 상위를 차지한 것도 수능세대부터 본격화된 현상이다.

특히 수능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는 시점에 본격화된 현상은 취업시장의 양극화였다. 세계화 풍랑 속에서 영어를 못하는 '토종 공부벌레'가 갈 곳은 많지 않았다. 대신 넉넉한 집에서 유학을 하거나 대학보다는 학원과 해외에서 경험을 한 해외파의 경쟁력이 훨씬 높아졌다. 초·중·고교시절 각종 계몽표어의 단골메뉴였던 '황금만능주의'라는 말은 점차 사라졌고, 기업 내에서도 '집안 좋은 직원들이 깨끗하고 일도 잘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단적인 예로, 강남 출신 유학파가 서로 밀고 당기며 취업시장에서 세를 넓히는 동안, 고시에 낙방한 '토종학생'들은 '무한경쟁'에서 밀리며 비정규직도 마다하지 않는 처지가 됐다.

캠퍼스의 '낭만'을 노래하던 386 선배들도 차츰 변화에 적응해 갔다. 그들 자신은 수능과 토익을 모르고 살았지만 신입사원들에게는 높은 수능점수와 토익점수를 요구했다.

수능세대들에게는 취업을 위한 '자격증'마저도 점점 효력을 잃어갔다. 공인중개사, 투자상담사, 미국공인선물거래사(AP) 등의 자격증을 따거나 토익 고득점을 맞아도, 심지어 고시나 회계사 시험에 통과해도 선배들만큼의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한국 실업률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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