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져보면 가루가 쉽게 묻어난다. 돌을 들어 부딪치면 하얀 가루가 바람에 휙 날려간다.
오천광산은 1997년 문을 닫았지만, 노천광산이었던 탓에 주변은 전혀 정비가 되지 않은 상태다. 하얀 돌덩어리들이 말 그대로 그냥 굴러다닌다. 경운기나 트럭 바퀴에 깔려 잘게 부서진 석면 원석들이 그저 방치돼 있다.
저것으로 만든 일명 '돌섬유'인 석면은, 한번 호흡기를 통해 사람 몸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배출되지 않는다. 폐가 섬유화돼 굳어가는 석면폐나 흉막·복막에 생기는 악성중피종 등 질환으로 나타나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는 허응영 씨(51)가 돌을 들어 보이며 "하얀 성분이 많을 수록 더 높은 등급의 원석(原石)으로 쳐줬다"며 "남자들이 땅에서 돌을 캐내면 여자들은 이 돌을 더 하얗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문질러 깎아내곤 했다"고 말했다.
원석 채취과정에서 돌가루를 흡입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허 씨 본인도 중학교를 졸업한 1970년대 초반부터 4~5년간 이곳 오천광산에서 석면원석 채취장에서 일했다.
그는 요즘들어 부쩍 꺼림칙하다. 석면 광산이나 공장에서 근무했던 이들은 물론, 충남 보령시와 홍성군 등 광산 주변 5개 마을에 그저 살고 있었을 뿐인 이들에게서 석면폐 등 질환조짐이 발견됐다는 최근 언론 보도 때문이다.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8일 홍성군 광천농협과 보령시 교성리 마을회관에서 각각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 환경부·노동부·보건복지가족부 등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추진하는 '석면광산 주변 건강영향 조사 및 후속조치 계획'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 장관은 "폐 석면광산 주변 지하수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일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 사회 등 영역에서 차분히 피해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홍천 광천농협에는 홍천 은하면 화봉리 야동마을 주민 2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광천광산 인근에 살고 있는 이들로, 지난해 4월부터 환경부와 가톨릭대가 실시하고 있는 '석면 건강영향 조사'에서 석면으로 인한 폐질환으로 진단을 받은 이들이다.
부부가 함께 석면 폐질환 진단을 받은 고연산(75)·최준분(72) 씨는 "그저 기침이 심하고 가래가 많이 나온다고만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당숙과 부친이 모두 폐질환으로 사망했다는 정지훈 씨(62) 역시 석면폐 진단을 받은 상태다. 정 씨는 "옛날엔 우리 마을에 광산에서 날려 온 석면 먼지가 하얗게 깔리곤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들의 건강 피해를 보상해줘야 할 주체가 불명확하다는 게 문제다. 멀리는 일제시대 때부터, 가까이는 10여년 전까지 광산을 운영하던 업체들이 다 문을 닫은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결국 국가가 이들의 피해를 구제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겠냐"며 "진료비·보상비 지원을 위한 특별법 마련이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종건 홍성군수도 "산업재해 제도로는 석면피해 입증이나 보상비 지원이 불가능하다"며 "건강검진 지원이나 폐질환 의증 환자들의 진료비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 장관 역시 "지난 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들이 나와 노동부 장관을 함께 불러 범정부적 차원의 대책을 강구하라고 당부했다"며 "첫째로 주민건강, 둘째로 광산지역의 친환경적 복원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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