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확충펀드,시작부터 '뒤뚱'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 2009.01.08 14:34

예보, 자산관리공사 참여 검토…은행 외면도 변수

은행권 자본확충펀드가 출범하기도 전에 뒤뚱거리고 있다. 한국은행과 금융당국 사이에 이 펀드의 구체적인 설립 및 추진 방안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게다가 정부 소유 은행을 제외한 다른 시중은행들이 이 펀드의 지원을 원하지 않고 있어 실효성 논란이 불가피하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8일 "자본확충펀드과 관련해 △특수목적회사(SPC)에 대한 출자기관과 규모 △한은의 대출에 대한 담보로 무엇을 잡을 것인지 △펀드의 손실 발생시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지 등을 놓고 아직 논의중으로, 이런 것들이 구체적으로 확정돼야 공식 출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SPC에 출자할 기관에 기존 산업은행 외에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등을 새로 포함시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 삐걱거리나=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의 본격 추진에 앞서 은행권의 체력을 높이기 위해 자본확충펀드라는 '묘수'를 꺼내 들었다.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SPC에 10조원 가량을 대출하고, SPC는 자본확충펀드에 출자하는 형태다. 이 펀드는 또 산업은행의 2조원 출자, 기관투자자와 일반투자자 자금 8조원 등 총 20조원 규모로 출범할 예정이었다.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현 상황을 '심각한 통화수축기'로 판단해야 한다. '한은법 80조(영리법인에 대한 여신)'는 '금융기관이 기존 대출금을 회수하며 신규 대출을 억제하고 있는 심각한 통화신용의 수축기에…(금통위) 위원 4인 이상의 찬성으로…영리기업에 대해 여신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하지만 최근 200조원에 이르는 시중 유동성이 부분적으로 기업어음(CP), 회사채 등 크레디트물(신용물) 쪽으로 흘러들어가며 '돈맥경화 현상'이 다소 해소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서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 나섬에 따라 신용경색 현상이 다소 완화되는 모습이다.

한 금통위 위원은 "현 상황을 통화수축기라고 볼 징후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며 "신용경색의 완화 정도를 지켜보며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은은 8일 발표한 '2008년 12월중 금융시장 동향'을 통해 "장단기 시장금리 및 은행 여수신금리가 큰 폭으로 하락하고 회사채, CP 발생규모가 확대되는 등 금융시장 여건이 개선되고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만약 한은이 자본확충펀드에 대출하면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12월에 이어 11년만에 특별융자를 실시하게 된다. 하지만 최근 금융시장에 '훈풍'이 불기 시작함에 따라 한은 내부에서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은은 이를 근거로 SPC를 설립하려던 당초 방안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방안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한은 고위 관계자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한은은 산은이나 다른 기관에 간접 지원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또 SPC를 설립한다면 누가 이를 주도적으로 할 것인가도 논란거리다. 설립을 주도하는 쪽에서 자본확충펀드의 손실에 대해 일차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산은 외에 SPC에 출자가 가능한 예보와 자산관리공사 등으로 출자 기관을 확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한은의 SPC에 대한 대출시 무엇을 담보로 잡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 입장에서 손실의 일부라도 떠안게 되면 발권력을 동원해 민간회사를 지원하고, 그에 따른 손실을 국민 부담으로 돌렸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실효성 있을까= 시중 은행들은 벌써부터 자본확충펀드의 이용을 꺼리고 있다. 이 펀드를 이용할 경우 '부실 금융회사'로 낙인찍힐 것이란 우려다.

자체 자본확충을 통해 금융감독원의 국제결제은행(BIS) 기본자본비율 권고치인 9%를 달성하는 시중 은행은 이 펀드를 굳이 이용할 필요가 없다. 국민·신한·하나은행 등 대형 은행이 여기에 해당된다. 게다가 부산·대구은행 등 지방은행들도 우선 자체 자본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시중 은행들은 특히 "펀드 지원을 받으면 경영권 간섭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SPC는 펀드 지원을 받는 은행에 주요 채권자의 위치를 확보한다. 지원받는 은행들은 신종 자기자본증권, 상환우선주, 후순위채 등을 SPC에 넘기게 된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금융당국의 경영권 간섭을 배제하기 힘들어진다. 금융위원회의 '사전 수요 조사' 결과 지원을 희망하는 은행이 많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당초 펀드 조성 규모로 20조원을 잡았지만 이것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사안"이라며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은행들의 BIS 비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염두에 둔 선제적 조치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상황진행에 맞춰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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