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커플" 커밍아웃했더니…

머니투데이 박희진 기자 | 2009.01.08 11:10

[신입사원 생존백서-아찔했던 순간②]사내 연애 백태

편집자주 |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고달픈 시집살이 얘기만이 아니다. 직장생활도 마찬 가지. 대학을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지만 '고생 끝 행복 시작'은 '표어'일 뿐 곳곳이 지뢰밭이다. 험난한 취업전선에서 살아남은 신입들은 학벌, 학점, 토익, 각종 자격증 등 '스펙'면에서는 천하무적이지만 정작 입사 후 생활에 대해서는 '젬병'이다. 상사를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업무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실타래처럼 복잡한 인간관계는 어떻게 풀어야하는지 모르는 것 투성이다. 머니투데이는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직장생활 적응 노하우를 '사회 선배'들의 경험담을 통해 알아보는 기획, '신입사원 생존백서, 아찔했던 순간'을 마련했다.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누구나 아찔했던 순간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진땀나는 상황이었지만 '예비' 사회인들에게 선배들의 경험담은 훌륭한 교과서다. 기업들도 어렵게 뽑은 인재를 놓치지 않으려면 꼭 알아둬야 할 이야기다.


'C.C'(캠퍼스 커플). 청춘과 낭만이 가득했던 대학 캠퍼스를 떠올리면 핑크빛 하트와 함께 그려지는 단어다. 세상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졌다고 해도 캠퍼스 하면 여전히 순수와 낭만적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 그 시절과 오버랩 되는 캠퍼스 커플은 젊음의 특권이기에 더욱 빛난다.

반면 회사 생활은 다르다. 회사하면 주로 딱딱한 2차 집단을 떠올린다. 사내 커플이 캠퍼스 커플과 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기도 하다. 사내 커플은 '금지된 사랑'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내에서 커플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고 그 때문에 사내 커플은 인사 상의 불이익도 감수해야했다. 결혼까지 골인하게 되더라도 여자는 회사를 관두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있다.

캠퍼스 커플만큼이나 사내 커플이 많아지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눈에 띄게 늘면서 사내에서 '매칭'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혼 적령기의 싱글 남녀가 같은 일로 머리를 맞대며 씨름하고 잦은 야근에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내다보니 자연스레 눈 맞는 일이 많아졌다. 직장생활에 대해 서로 이해해줄 수 있는 폭이 넓다는 점도 사내 커플 붐에 일조했다.

기업들도 과거 무조건 터부시하는 분위기에서 결혼 후에도 '지속가능한 직장 생활'을 위해 사내 커플을 환영하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사내 커플은 더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

대학을 갓 졸업하고 부푼 가슴을 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20대 피 끓는 청춘들이야 말해 무엇 하리오.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라며 지나간 세월을 더듬을 필요도 없는 '청춘' 아닌가. 특히 요즘 젊은 친구들은 감정 표현에 솔직하니 사내에서 일어나는 '썸씽'에 더욱 적극적이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그 '변화의 속도'를 잘 파악하고 속도조절을 하는 노하우는 필요하다. 혼자 너무 앞서갈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사내 커플이 흔해졌다지만 여전히 '비밀의 룰'은 유효하다.

#대기업 홍보실에서 근무중인 김씨와 한씨. 겉으로 둘은 입사 동기 관계지만 속으론 반년째 남 몰래 사랑을 키워온 커플 관계.

평소 '007작전'을 방불케하는 비밀 데이트로 한번도 '발각'된 적 없는 '천연 관계'다. 그러다 지금 생각해도 진땀이 뻘뻘 나는 '시추에이션'에 맞닥뜨리게 된다.

사연은 이러하다. 김씨의 회사는 매년 여름이면 협력사 직원들과 함께 해외 출장을 간다. 출장은 상하이를 거쳐 홍콩으로 가는 3박4일 일정으로 처음 이틀간은 '무사고'였다. 문제는 셋째날 홍콩으로 이동하는 비행기 일정이 꼬이면서 터졌다.

비행기 시간이 원래 오전 9시였는데 오후 2시로 미뤄졌다. 일행은 각자 호텔 방에서 머무르거나 호텔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런데 오후 2시에서 1시로 갑자기 당겨지면서 사단이 났다.

동행한 여행사 직원이 집결 시간을 당기기 위해 일행들에게 부랴부랴 연락을 취하고 있는데 김씨와 한씨만 '행방불명'이 된 것.

여행사 직원은 급히 김씨의 호텔방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마지막으로 한씨의 호텔방을 갔는데 세상에 김씨와 한씨의 '어색한 포즈'가 딱 걸리고 만 것. 둘은 어색한 포즈로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IT업계에 종사하는 박씨. 호탕한 성격에 비밀이라고 없을 것 같은 사람이지만 1년 넘게 네 살 차이나는 여자 상사와 비밀 연애를 즐기고 있다.

요즘 '찜질방' 데이트가 워낙 인기는 하루는 둘이 찜질방을 찾았다. 평소 회사 근처 식당, 술집, 영화관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는 회사 사람과 마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히 피해왔다. 그러나 찜질방은 상대적으로 사적인 공간이라 회사 사람과 마주칠 생각은 없겠다 안심했다.

그런데 아뿔싸. 찜질방에서 떼거지로 몰려있는 회사 사람들과 마주쳤다. 옆팀에서 회식하러 단체로 찜질방에 온 것. 1년 넘는 사내 연애의 비밀이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찜질방에서도 회식을 하는 변화된 요즘 트렌드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호텔업계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모씨. 타고난 여성스러움과 늘씬한 몸매가 돋보이는 김씨는 입사하자마자 주변 남성들로부터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호텔 관리 업무를 맡다보니 호텔 내 여러 부서와 접촉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김씨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오게 된다. '호텔의 꽃'이라 불리는 프런트를 맡고 있던 회사 선배였다. 그는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걸 맞는 출중한 외모의 소유자로 둘은 이내 연애 감정을 싹틔우게 된다.

둘은 여느 사내 커플처럼 둘만의 은밀한 연애를 즐겼다.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지만 굳이 알릴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심야 영화관에서 동료 직원들과 우연히 마주치면서 딱 걸렸다. 혹시 회사 사람들을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심야를 택했는데 거기 서 회사 사람들을 마주쳤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김씨는 오히려 괜히 숨기는 것도 불편했는데 이참에 자연스럽게 ' 커밍아웃'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것이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통 연애하는 남녀간에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가장 간단, 명확한 이유인 '성격 차이'로 헤어지게 됐는데 그때부터 '고난의 길'이 펼쳐졌다.

헤어진 이후 더불어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후유증'이 너무나 컸던 것.

연인 사이였을 때 둘과 모두 친했던 한 동료는 연인 관계 이후 이 둘을 대할 때 서먹해하고 불편해하면서 셋 다 관계가 껄끄러워졌다. 결국 여자가 다른 회사로 직장을 옮기는 '이별의 수순'을 밟게 된다.

다른 회사로 옮기고도 가끔 듣는 이야기에 결국 그 선배가 또 다른 사내 연애로 결혼까지 했다는 소식을 듣고 괜히 하루 종일 밥맛이 사라지기도 했다.

#리서치업계에 종사하는 임모씨는 '불철주야' 회사에서 일하고 몇 번 필름이 나갈 정도로 술을 먹다 보니 동갑내기 남자 동료와 '사내 커플'이 돼 있었다.

같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비슷한 일로 받는 스트레스로 푸념을 늘어놓으며 위로하다 둘은 어느새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야근과 주말 근무 등 근무 환경이 비슷했고 서로의 사정을 훤히 아는 만큼 이해의 폭도 넓어 회사에서 일하며 연애도 곁들이는 맛이 쏠쏠했다.

그러나 집에서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같은 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을 장면을 목도하는 상황이 빈번해지면서 연애 감정이 급속도로 식게 된다.

임씨가 말하는 사내 연애를 하는 동안 연애 감정이 가장 빨리 식게 되는 상황 중 하나는 '상사 앞에서 묵사발 되는 남친을 보는 것'. 이 보다 더 최악은 '그런 상사에게 아부 떠는 남친'을 마주 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랑은 흔히 콩깍지에 비유되는데 좁은 회사에서는 콩깍지를 벗겨내는 적군의 유혹이 너무 많았던 것.

임씨의 사내 연애는 다행히 주변에 알려지지 않아 '둘만의 썸씽'으로 끝났지만 임씨는 사내 연애, 특히 작은 회사에서 사내 연애는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쿨한 연애가 대세라지만 사내 연애가 깨지면 여자가 피해가 더 큰 게 사실. 이때문에 여자들이 사내 연애에 대해 더 조심하고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설사 사내 연애를 하더라도 끝까지 '비밀'로 두고 싶어 하는 이유기도 하다.

홍보업계에 종사하는 최모씨는 "사내 커플을 하면 결국엔 여자가 다 회사를 관두더라. 깨져도 여자가 회사를 관두고 계속 사귀어도 여자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경우가 태반이죠. 그만큼 여자한테 손해라는 생각도 큰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잘 되는 케이스도 많다. 전자업체 신입사원 연수에서 같은 반에 배정받은 이양과 박군은 매일 합숙하며 부대끼다 보니 정이 들었고 자연스레 연인으로 발전하게 됐다.

이양은 연수 이전 남자 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조심스러웠고 박군 역시 같은 반 동기 들에게 조차 사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각각 동기 모임에 '부서사람들과 점심을 먹는다'는 핑계를 대고 점심약속을 잡았던 둘은 회사 정문 앞에서 모임 장소로 향하던 동기 집단과 정면으로 마주쳐 발각되고 말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들은 동기들 뿐 아니라 부서에까지 '공식커플'이 됐고 회사내 수많은 '감시의 눈'에도 착실한 커플로 1년 여간 꾸준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사례에서 보듯 선남선녀를 이끄는 '자동 매칭'을 무조건 막을 수는 없다. 사내 연애에도 노하우가 필요하다. 특히 괜히 남의 입방아에 올라 좋을 리 없는 신입 사원의 경우 사내 연애에 더욱 각별히 신경을 써야한다.

사내 연애로 공, 사를 구분 못한다는 소리도 들을 수도 있고 공공의 적으로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둘 사이에 냉기류가 흐르면 괜히 회사 분위기 망친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고 좋을 때는 눈의 가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내 연애를 하더라도 회사에서 애정 표현은 금물이다. 회사에서는 업무적인 관계로만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두 사람의 직급이 다를 경우에 이 원칙이 절대적이다.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이라는 책에도 "사내 누군가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직장동료들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직장에서는 둘 사이의 관계를 암시할 만한 어떤 행동이나 말도 삼가고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것. 또 직장동료와 사귀기 전에 둘 사이가 나빠질 경우를 미리 한 번 생각해보고 신중을 기할 것을 주문한다.

아모레퍼시픽 혁신인재개발사업부 천화영 과장은 "사내커플은 같은 회사에 있다 보니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주제도 많고 서로의 생활에 이해하는 면이 크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다만 공과 사는 철저히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른 부서인 경우에는 덜하겠지만 특히 같은 부서거나 다른 부서라도 같이 일할 일이 많은 경우에는 개인적인 감정과 업무를 연결시키지 않는 것이 필수 사항이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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