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말아톤과 세밑 국회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 2008.12.31 13:11
"초원아 이리 와. 여기까지 오면 초코파이 줄게."

영화 '말아톤'에서 엄마와 초원이는 초코파이와 등산을 놓고 협상을 한다. 어떻게든 초원이를 운동시키려는 엄마는 초원이가 밥보다 좋아하는 초코파이를 꺼낸다. 발걸음을 한 발짝 뗄 때마다 초원이와 엄마는 각자 '원하는 것'을 얻는다.

협상은 밀고 당기기지만 그 전제는 신뢰다. 내 것을 내놓으면 상대도 내놓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보통 협상이 결렬되는 것도 서로 믿음이 없는 탓이다.

저잣거리의 흥정이나 대형 인수합병(M&A)과 같은 빅딜도 마찬가지다. 신뢰가 없으면 동전 한 닢도 주고 받기 힘들다.

2008년 마지막날 국회가 최악인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협상'은 지속하지만 그 전제가 돼야 할 믿음이 없기에 그렇다.

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만나 2-3시간씩 얘기를 한다. 물밑으로도 많은 얘기가 오간다. 그사이 수많은 거래 시나리오가 생겼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서로를 향해 귀를 열지 않는다. '혹시 속고 있지 않나' 의심만 가득히 품을 뿐이다. 뒤에 숨은 꼼수가 뭘까 생각하느라 정작 상대방의 제안을 진지하게 듣지 못한다.

여야 공히 그렇다. 야당인 민주당은 집권 여당이 밀어붙이기 수순을 밟고 있다고 단정한다. 진전된 양보안에도 콧방귀다. 여당은 민주당의 모든 행동이 시간끌기용으로만 느껴진다. 조급한 법안 처리가 가져올 문제점에 대한 진지한 조언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18대 국회 출범 때 외쳤던 '상생'은 이미 잊었다. 오히려 서로가 없었으면 바랄 뿐이다. '해머'와 '전기톱'은 그 상징이 됐다.

각자가 자기 것은 조금도 내놓지 않은 채 임전무퇴만 외친다. 서로 사는 게 아닌 공멸의 길인데도 말이다. 지금은 필요한 것은 망치도, 초코파이도 아니다. 믿어야 돌파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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