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망년회 즐기는 일본인을 보는 마음

머니투데이 홍찬선 MTN 경제증권부장(부국장) | 2008.12.26 14:06

[홍찬선칼럼]10년만에 위기에 빠진 우리의 슬픈 자화상

한국에서 망년회 좋아요~

“부산에서 망년회를 하니 색다른 맛도 나고 아주 좋습니다. 내년에도 엔고-원저가 지속되면 한국에서 망년회를 할 계획입니다.”

며칠 전 일본의 공영TV인 NHKbs1에서 보도된 ‘엔고-원저, 한국에서 망년회’ 프로그램에 나온 한 여행객의 말이다.

이 보도에서는 “그동안 쇼핑이나 관광을 위해 한국을 찾은 일본인이 있었지만 망년회를 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것은 아주 이례적”이라고 했다. 한해를 마무리해고 새해계획을 짜는 시간인 망년회를 한국에 가서 하는 것 자체가 정말 이례적인 일이라는 의미였다.
설명은 이어졌다. 일본의 후쿠오카에서 부산까지 쾌속선으로 3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데다 원엔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으로 부산에서 망년회하는 비용이 일본에서 하는 것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10만 엔을 환전하면 142만원 정도 받는데 (과거와 비교하면) 5만엔 정도는 공짜로 생기는 셈이라서 한국망년회에 참석했다”는 인터뷰도 소개했다. 게다가 망년회가 열리는 곳은 허름한 음식점이 아닌 부산의 최고급 호텔이라는 것을 몇 차례 강조했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그 보도를 보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한국에서 망년회를 하는 일본 사람이 많다는 것은 엔고-원저로 드러나듯 한국 경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기 침체로 한국 손님이 거의 찾지 않는데 일본 사람이 오니까 고맙다”는 그 호텔 지배인의 어색한 미소의 인터뷰 탓만도 아니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은 ‘어쩌다 우리가 다시 이 지경이 됐는가?’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원엔 환율은 100엔당 900원대로 떨어져(원화가치 상승) 일본으로 쇼핑이나 골프를 하러 떠나는 사람이 많았는데, 1년도 안돼 정반대의 처지의 나락으로 추락한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44장에는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라는 말이 나온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으며 머무를 줄 알면 위험하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와는 정반대의 행태를 보임으로써 치욕을 겪고 위험에 빠진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는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을 위해 무리하게 환율을 떨어뜨리고(원화가치 상승), 종합금융회사를 중심으로 과도하게 해외차입에 나서 경제주권을 IMF에 빼앗기는 정축국치(丁丑國恥)를 겪었다.

이번에도 은행이 과도하게 단기 해외차입과 부동산담보대출을 늘리고 국민소득 2만달러를 의식한 때문인지 환율이 거꾸로 움직이면서 위기 상황에 빠져 있다. 아직 무더기 부도가 발생했다든가, 은행이 문을 닫았다든가, 나라가 외화부도에 빠졌다든가 하는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환율이나 주가로 보면 이미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다.

똑똑한 사람은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역사를 보고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반면 어리석은 사람은 난로에 손을 데인 뒤에도 비슷한 화상을 입는다고 한다. 10년 만에 경제위기를 다시 맞이하고, 우리 안방에서 일본 사람들이 즐겁게 망년회하는 것을 봐야 하는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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