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어느 은행원의 한숨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 2008.12.26 08:43
A은행의 간판 프라이빗뱅커(PB)로 꼽히는 K씨는 최근 2개월 동안 몸무게가 무려 6킬로그램이나 빠졌습니다. 급변하는 금융시장과 이미 '반토막'보다 더 떨어진 투자수익률, 그리고 '당신이 물어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고객들의 항의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K씨는 은행에서 소위 가장 잘 나가는 PB 중 한명 입니다. 직접 자산을 관리하는 고객수는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며, 은행 경영진의 자산관리도 그가 맡을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는 뱅커입니다. 그러나 요새 자꾸 일에 회의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제가 은행 PB업무를 처음 맡은 것이 지난 92년입니다. 17년 가까이 PB업무를 해 오면서 올해처럼 힘든 경우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신경을 써서 포트폴리오를 짜도 세계시장이 일제히 폭락해 버리는데 방법이 없더군요."

지난해 수십억 원을 해외 역외펀드에 넣은 고객이 이후 은행과 선물환계약을 했다가 원금의 90% 이상을 날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환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만든 선물환계약이 오히려 위험을 가중시킨 셈이 됐다며 그는 허탈해 합니다.

이번 금융위기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을 다시 돌아봤다고 합니다. 예전까지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과연 내가 무엇을 안다고 고객들에게 용감하게 이 상품의 가입을 권했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자괴감이 엄청나게 엄습하곤 하는데, 그 압박은 참기 힘들 정도랍니다.


거액을 잃은 고객들은 PB들에게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했냐'고 항의를 합니다. 최고의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아 은행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찾으려 했는데, 오히려 원금의 상당부분을 까먹어 버린 셈이 됐으니 화가 안 날수 없을 겁니다.

문제는 항의하는 방법입니다. 심지어 일부 고객들은 PB들에게 개인적으로 변상을 요구하고 있고, 여의치 않으면 법적으로 고소하겠다고 연락을 해 온다고 합니다. K씨는 "고객에게 죄송한 마음이지만 실제로 그만한 금액을 변상할 돈도 없다"며 고개를 떨굽니다. PB가 손해를 변상할 이유는 실제로 없지만, 인격적 모욕까지 당하고 나면 차라리 '돈'으로 해결해 버리고 싶기까지 한다고 하네요.

"고객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직원들도 제도를 통해 좀 보호해 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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