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저축은행 구조조정 이렇게

이건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2008.12.17 10:56
금융위기는 탐욕과 공포의 산물이라고 한다. 탐욕으로 인한 부실의 축적이 위기의 직접 원인이라면, 공포로 인한 투자심리의 위축은 급속한 금융시장 경색을 통해 위기를 확산한다.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기업 및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요구되는 이유는 막연한 공포가 실제 이상으로 위기를 부풀리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다.

성공적인 구조조정의 핵심은 '신속'과 '과감'이다. 도산이 불가피한 기업 및 금융기관은 적시에, 완벽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섣부르게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다 회생이 가능한 기업이나 금융기관까지 문을 닫아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은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자칫 예금자의 공포심을 자극하여 건전한 금융기관까지 예금인출 사태에 직면하고, 그 결과 멀쩡한 기업까지 자금경색으로 부실화될 수 있다.

지난 3일 정부가 발표한 저축은행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대책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특히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저축은행의 PF대출 1조3000억원을 매입하는 방안에 대해 부실 저축은행의 도산을 지연하는 미봉책 정도로 폄하하거나 부실 저축은행의 도덕적해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보다 단호한 구조조정 조치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저축은행 PF대출의 건전성에 분명히 문제가 있어서다.

저축은행 총대출의 4분의1에 달하는 12조2000억원이 PF대출이고, 이 대출의 연체율이 16%를 상회해 은행, 보험사보다 현저히 높다. 더구나 정부의 PF대출 사업장 실태조사 결과 금액기준으로 정상이 55%에 불과하고 주의 33%, 악화 우려가 12%로 나타나 추가 부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에서 인위적 구조조정에 착수하기보다 일단 PF대출의 추가 부실화 가능성을 낮추면서 시간을 갖고 구조조정에 임한다는 정부 대책은 상당히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 PF대출은 본질적으로 건설관련 대출이며 이 대출의 부실은 곧 건설업계의 부실과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에 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건설업 자체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별 사업장 중심으로 PF대출의 부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선후가 뒤바뀐 꼴이다. 따라서 캠코가 저축은행의 PF대출을 인수하는 것은 건설업 구조조정의 진행에 따라 부실 여부가 명확해지는 시점까지 PF대출을 보다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PF대출의 상당부분이 담보가 확보됐거나 상당한 수준의 충당금이 설정돼 부실화되더라도 실제 손실금액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건설업 구조조정의 결과를 기다릴 시간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또 저축은행이 금융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별로 크지 않다는 점은, 역으로 현 시점에 무리하게 인위적 구조조정을 서두를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
더구나 부실징후가 뚜렷한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은 이미 상당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정부 대책 또한 단순히 PF대출의 매입에 그치지 않고 엄격한 사후관리와 정밀 모니터링은 물론 업계 스스로 고강도 자구노력 및 주주배당 제한 등을 요구한다. 이 조치들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히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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