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몇닢에 실려온 훈훈함이 그곳에

머니위크 이재경 기자 | 2008.12.22 04:11

[머니위크 커버스토리]구세군 모금현장에서 본 세상풍경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들려오는 정겨운 소리가 있다. 구세군의 종소리다. 어둑한 퇴근길에 앞길을 밝혀주려는 듯 사람들의 발걸음을 자선냄비 앞으로 재촉하곤 한다.

그런데 그 소리가 잦아들었다. 눈에 띄게 작아진 종소리. 이젠 들릴 듯 말듯 울린다. 구세군 가까이 다가가야만 모금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무엇보다도 종 자체가 작아졌기 때문이다. 구세군은 올해부터 종을 작은 것으로 바꿨다. 손으로 감싸 쥐면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매우 작은 크기다. 예전 종은 크기와 무게에서 지금 것의 두 배는 넘었다.

구세군 모금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수진 씨는 "모금을 하는 곳 주변 상점들로부터 민원이 많이 제기된다"면서 "시끄럽다는 눈총이 많아 이제는 마이크도 쓰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김수진 씨는 종을 울리는 법도 설명해줬다. 손잡이를 잡는 것은 기본이지만 종의 금속부분을 손으로 잘 감싸줘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소리가 조금이라도 작게 울린다는 것.

지하철역에 자리한 구세군들은 더 조심스럽다. 실내인만큼 소리가 크게 울려 주변 상점들이 눈치를 많이 주는 분위기다.

기자가 찾은 지하철 2호선 시청역의 구세군 종소리는 유행가에 묻혀 있었다. 바로 앞 액세서리 가게에서 틀어놓은 소리다. 1호선 시청역 구세군 종소리도 맞은 편 휴대폰 판매점 직원들의 호객소리보다 작은 듯했다.

◆100원짜리 동전 몇개의 소중함

그래도 구세군은 바쁘다. 기부하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하고 길을 묻는 이들에겐 출입구도 안내해야 한다.

의외로 길을 묻는 행인들이 많다. 3명 중 1명은 기부 대신 질문을 건넨다. 시청역 자체가 복잡하기도 하고 마땅히 길을 물어볼 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가 역내 근무 직원을 크게 줄인 탓이다.

구세군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다들 먼 곳에서부터 모인다. 그곳 지리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아는 만큼은 친절히 답해준다.

구세군들이 무서워하는 이들도 있다. 노숙자들이다. 보통 2인 1조로 봉사하지만 한 명이 빠져 혼자 모금을 하는 경우 가끔 노숙자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자신이 불우이웃이라며 자선냄비의 돈을 달라고 종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반대의 경우도 목격했다. 노숙자로 보이는 한 남자가 다가왔다. 오랫동안 씻지 못했는지 손은 검고, 수염이 길었다. 배낭은 몸보다도 컸다. 그는 구세군 자선냄비 주변을 한바퀴 돌더니 100원짜리 동전을 넣었다. 이어 동전 몇개를 더 넣었다.

그리곤 시청광장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불편해 보이는 몸을 이끌고 천천히 사라졌다. 그가 조심스레 넣은 몇개의 동전은 그에겐 매우 소중한 돈이었을 것이다.

◆힘든 사람들이 더 잘 나눈다

구세군 김수진 씨는 "힘들어 보이는 사람,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기부를 더 잘 한다"고 했다.


겉보기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기자가 서 있던 몇 시간 동안 기부를 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나이든 분들의 손길도 많았다. 잔뜩 멋을 부린 사람, 세련된 사람들의 손길은 그다지 잦지 않았다.

김수진 씨는 구세군 경력이 20년 정도 된다. 1987년부터 했다고 했다. 그가 구세군 봉사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총 모금액이 1억원을 넘었다며 구세군 전체가 크게 기뻐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가장 힘들었던 1997년과 1998년 외환위기 때에는 그 모금액이 20억원을 훌쩍 넘었다. 힘든 시기를 몸으로 겪어 보니 주변의 힘든 이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구세군은 경부고속도로의 궁내동 서울 톨게이트에서도 모금을 한다. 고속도로 이용료를 내고 받은 잔돈 같은 것을 기부할 수 있게 한 것.

구세군 오혜석 씨는 "매연에다 찬바람 때문에 톨게이트에서 모금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는 "묵직한 동전주머니를 내밀던 한 트럭운전사나 요금을 내고 받은 거스름돈을 흔쾌히 내미는 운전자들 때문에 힘이 나고 보람도 크다"면서 "그런데 고급 승용차 운전자들이 기부를 하는 것은 단 한번도 못 봤다"고 꼬집었다.

구세군 윤왕섭 씨와 오혜석 씨는 각각 재작년과 작년에 환갑을 넘겼다. 1970년대 초부터 매년 꾸준히 활동을 해 왔다. 40년에 가까운 세월이다. 올해도 톨게이트 봉사일정이 3번 잡혀 있다며 미소를 보였다.

구세군 자선냄비에도 단골이 있다. 오혜석 씨는 "한때 매년 꼭 한번씩 두둑한 봉투를 넣어주는 이가 있었다"며 "그 사람이 언제부턴가 발길이 끊겼는데 그로부터 5~6년 뒤 다시 찾아와서는 두둑한 봉투를 넣었을 때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모금은 크리스마스이브까지만

구세군은 구세군 대한본영과 각 영문에서 12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까지 모금을 한다. 각 영문별로 지역을 담당하는 형태다.

기자가 찾은 서울제일영문에서는 시청역에서 매일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 모금을 한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밤 11시까지도 활동한다. 궁내동 톨게이트의 경우 각 영문에서 돌아가면서 맡는다.

11월에는 교인들 중 누가 모금을 나갈 것인지를 정한다. 2명이 한조가 돼 2시간씩 돌아가면서 일하는데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신청을 하는 방식이다.

구세군 이순자 씨는 "자신이 원하는 날과 시간에 신청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며 "12월 한달 동안 서너번 봉사를 나가는 사람이 많고, 열흘 이상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구세군은 이들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자선냄비로만 총 30억9745만6580원을 모았고 이자 및 후원금으로는 2111만219원이 들어왔다.

이 모금액은 기초생활보호자 구호, 심장병환자 치료지원, 복지시설 지원, 노후시설 보강, 실직자 및 노숙인 재활지원사업, 결식아동 지원 및 조선족 심장병 치료 등에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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