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오모테 섬의 아리랑

이리오모테(일본)〓황국상 기자 | 2008.12.08 14:57

[그린강국코리아]4부 "이젠 녹색관광시대"<상-1>그린&피스보트 동승기


↑이리오모테섬 주민, 이시가키 긴세이 씨(62)가 일본 전통악기 '사미센'을 연주하며 한국 민요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이리오모테=황국상 기자

옥색으로 빛나는 바다, 산호가 부서져 만들어진 모래 해변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느 방향으로 눈을 돌려도 보이는 울창한 아열대우림, 굽이굽이 깊고 그윽하게 흐르는 푸른 강, 2층 이상 높은 빌딩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주변 경관은 마치 과거로 여행을 떠나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이곳은 일본 최남단 행정지구인 오키나와 현에서도 400㎞나 더 남쪽에 있는 이리오모테(西表) 섬. 넓이가 289㎢로 서울 강북지역 전체(297㎢)와 맞먹지만 인구는 1200여 명에 불과하다. 연평균 기온은 22~23도 정도로 일년 내내 두꺼운 외투를 걸칠 일이 없다.

섬 전체의 90%를 삼림이 차지하고 있는데 모두 국유림이다. 일본 정부의 삼림 보호정책에 따라 섬 안에 자동차 도로라곤 해변을 따라 이어진 130여㎞ 길이의 도로가 전부다.

전체 길이가 40㎞인 우라우치 강에만 410여 종의 물고기가 서식한다. 이곳에 살고 있는 멧돼지만 해도 3000~4000마리로 인간보다 몇 곱절은 많다. 전 세계에서 이 섬에서만 살고 있는 '이리오모테 산고양이'는 지역 주민들이 아끼는 명물 중 하나. '산고양이가 자동차에 치여 죽었다'는 뉴스가 지역 언론에 보도될 정도다.

지난달 하순 한국과 일본을 각각 대표하는 비정부기구(NGO)인 환경재단과 피스보트가 공동 주최한 '2008 피스 앤드 그린보트(2008 Peace&Green Boat)' 행사 참가자들은 이시가키(石壇) 섬에서 여객선을 타고 1시간만에 이리오모테 섬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이들은 한국인과 일본인 할 것 없이 저마다 탄성을 발하며 곳곳에 카메라를 들이대기에 바빴다.

이리오모테 섬 내 소나이(祖納) 부락의 대표이자 1970년대 말부터 이 지역에서 생태관광 운동을 벌여온 이시가키 긴세이 씨(石壇金星, 62)가 행사 참가자들을 맞았다.

그는 일본 전통악기 사미센(三線)의 명인이기도 하다. 사미센은 이리오모테 섬에서는 '산신'이라고 부른다.

↑ 일본 최남단의 이리오모테섬에 살고 있는 이시가키 긴세이 씨(62·맨 왼쪽)가
'2008 피스 앤드 그린보트'에 참가한 한국·일본 참가자들에게 이리오모테 섬을
안내하고 있다.


"이리오모테 섬은 인간이 압도적으로 소수인 유인도입니다. 1900년대 초중반 말라리아 때문에 섬 전체가 폐쇄됐다 말라리아가 박멸된 후 다시 사람들이 몰려와서 지금의 섬이 만들어졌어요. 여기 한국인들도 계신데 이곳 이리오모테 섬은 한국인들과 참 연관이 깊은 섬이랍니다."

'한국인들과 연관이 깊은 섬'이라는 말에 한국측 참가자들의 귀가 쫑긋해졌다. 이시가키 씨는 지긋이 눈을 감으며 아름다운 풍광 속에 가려진 아픈 이야기를 들려줬다.

◇恨 섞인 아리랑 들으며 韓日 서로를 바라보다= 일본 본토 가고시마로부터 1200여㎞ 떨어진 이리오모테 섬에 대한 기록은 15세기 한 조선인이 이 섬에 표류했다 돌아가서 남긴 것이 최초다. 지금도 섬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섬을 처음으로 기록해준 그를 기리고 있다고 한다.

↑ 일본 최남단 이리오모테 섬의 한 해변. 흐린 날씨임에도 해변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곳까지 바닥이 훤하게 들여다 보인다.


섬 주민들의 삶은 궁핍하진 않았지만 평화롭지도 않았다. 1600년대부터 스페인, 포르투갈의 군함과 상선이 난입해 처녀들을 납치해갔다. 19세기 말부터는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들어와 요새를 건설했다.

태평양전쟁 때는 조선인들이 몰았던 콩 수송선이 이리오모테 섬에 좌초하기도 했다. 일본군들은 이들을 이리오모테 섬 북서부의 탄광으로 끌고가 강제노역에 동원했다. 조선인들이 말라리아에 걸려 거동을 못하게 되자 일본군들이 이들을 숲에 갖다 버렸다.

이시가키 씨는 "멀지 않은 곳에 그 조선인들의 유골이 흩어져 있다"며 산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전쟁의 폭력성은 일본인도 피해가지 않았다. 일본군은 일본 큐슈 지방 남자들도 광산에 끌고 갔다. 이곳 광산에서 일했던 1000명 정도의 일본인 광부들 중 고향으로 돌아간 이들은 없다고 한다. 아직도 이 지역에 큰 비가 올 때마다 당시 아무 데나 버려지거나 묻혔던 이들의 유골이 발견된단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던 참가자들이 이시가키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차차 숙연해졌다. 한 일본인은 "더 이상 못 듣겠다"고 발길을 돌렸다. 한국인 참가자들은 그 조선인 광부들의 유골이 있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이시가키 씨가 한 관광객에게서 사미센을 건네받아 현을 튕기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가 부른 곡은 '아리랑'. 한국어와 일본어로 번갈아가며 부르는 그의 노래가 섬에 울렸다.

◇역사·환경·문화 유적이 난개발로 사라진다면= 이시가키 씨와 참가자들이 이어 방문한 곳은 3만년 이상 산이 깎여 만들어졌다는, 이리오모테 섬의 신들이 12년에 한 번씩 축제를 연다고 하는 투두하리 해변이었다.

옛날엔 남편이 부정한 행실을 하면 여기 와서 곤장을 15대 맞고 술 한통을 다 마셔야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 이리오모테 섬에 사는 새 한 마리가 해변에서 노닐고 있다.


이시가키 씨는 "여행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자연에서 비롯했다는 점에서 모든 나라가 같아요.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사람들 사는 것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게 곧 여행이죠. 생태적 여행이란 우리가 여기에서 한 행동을 실천하면 그게 생태적 여행이랍니다."

이처럼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한 이리오모테 섬도 자칫 지금 모습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 유니마트 등 개발회사들이 이곳에 놀이시설과 호텔 등 리조트 단지를 건설하려고 땅을 매입하고 있기 때문.

이시가키 씨 등 지역 주민들은 개발사업이 섬 내 문화·역사 유적과 환경을 파괴할 것이라며 반대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 이리오모테섬 투두하리 해변에서 한 참가자가 '평화'를 뜻하는 'Peace'라는 글자를 적어놓은 모습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네 남편이 나 사랑한대" 친구의 말…두 달 만에 끝난 '불같은' 사랑 [이혼챗봇]
  2. 2 노동교화형은 커녕…'신유빈과 셀카' 북한 탁구 선수들 '깜짝근황'
  3. 3 '6만원→1만6천원' 주가 뚝…잘나가던 이 회사에 무슨 일이
  4. 4 "바닥엔 바퀴벌레 수천마리…죽은 개들 쏟아져" 가정집서 무슨 일이
  5. 5 "곽튜브가 친구 물건 훔쳐" 학폭 이유 반전(?)…동창 폭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