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결혼을 하는 이유는 물론 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다. 최근 몇년 사이 ‘코리아 드림’을 꿈꾸며 입국하는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권 여성들이 위장결혼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영화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위장결혼이 이용됐다. 그 꿈의 나라는 미국이었다. 지난 1985년에 개봉된 우리나라 영화 <깊고 푸른 밤>(감독/배창호, 출연/안성기, 장미희)이나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미국이 합작해 1990년에 만든 <그린카드>(원제 : Green Card 감독/피터 위어, 출연/제라르 드빠르듀, 앤디 맥도웰) 모두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는 남자들이 위장결혼을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깊고 푸른 밤>의 백호빈(안성기 분)은 이민국의 까다로운 인터뷰를 넘기고 시민권 획득에 성공하지만, <그린카드>의 조지(제라르 드빠르듀 분)는 2차 인터뷰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본국으로 송환조치를 받게 된다.
◆삼류 양아치를 사랑한 파이란
2001년 작 <파이란>(감독/송해성, 출연/최민식, 장바이즈, 공현진, 손병호)도 위장결혼이 영화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파이란(Failan)은 백란(白蘭)의 중국식 발음으로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인천에서 3류 양아치로 전전하던 강재(최민식 분). 불법 테이프를 유통시키다가 걸려 열흘 간 구류를 살다 돌아온다. 한창 때 같이 구르던 친구이자 강재가 속한 조직의 우두머리인 용식(손병호 분)은 별 볼일 없이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고향에 배 한척 사 가지고 돌아가겠다는 소박하고 부질없는 꿈을 꾸는 강재는 수금을 하러 갔다가 자신을 조롱하는 같은 조직 내 새파란 후배들과 싸움을 하게 된다. 분개한 강재는 이들을 혼내고 친구인 용식을 따로 불러 술을 마신다. 이 와중에 다른 조직의 일원이 자신의 구역에 와서 술을 마시는 것을 본 용식은 싸움을 하게 되고 상대를 죽이게 된다. 용식은 강재에게 대신 감옥에 가 달라고 부탁하고 강재의 꿈인 배 한척을 살 수 있는 돈을 주겠다고 한다. 강재는 결국 자신의 꿈과 남겨진 인생의 전부를 맞바꾸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강재의 집에 경찰들이 찾아와 강재의 부인인 강백란(파이란, 장바이즈 분)이 죽었다고 전한다. 파이란은 유일한 친척을 찾아 인천에 온 중국 여인. 그러나 그 친척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상태였다. 혈혈단신이 된 파이란은 인근에 있는 직업소개소를 찾고, 한국에 머물러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위장결혼을 선택한다. 이때 강재는 돈을 받고 파이란과 결혼한다.
파이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강재는 결혼을 주선한 후배 경수(공형진 분)와 함께 파이란의 장례를 치르러 떠나는 기차 속에서 그녀가 남긴 편지를 읽는다. 그리고 그 편지에서 그녀의 결혼후 행적을 알고는 통곡한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강재는 귀향을 결심하고 용식을 찾아가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파이란>은 2~3년 전 또 다시 화제 아닌 화제가 됐다. 고등학교 국어 문법 교과서에 <파이란>의 홍보문구인 ‘세상은 날 삼류라 하고 이 여자는 날 사랑이라 한다’가 홑문장과 겹문장의 실례로 실리면서 영화 포스터가 함께 실렸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가 이제 코앞에 있다. 세상이 당신을 뭐라고 부르든 간에 당신을 사랑이라고 부를 당신의 파이란은 있는지.
◆결혼이주여성, 불법체류자 전락 늘어
파이란은 그래도 행복한 위장결혼을 했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서글픈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한면을 보여주는 아픔이다. 위장결혼이 한국으로의 불법 취업용으로 사용돼, 안마시술소 등 환락가로 ‘팔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결혼을 이용해 한국에 들어온 후 곧바로 가출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은 결혼 후 2년이 경과해야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이혼, 가출 등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결혼이민자 불법체류 및 출국 현황’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결혼이주여성 10만4290명 중 7.8%에 달하는 8137명이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이는 2004년 3249명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 약 24만명
우리 주변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찾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니다. 노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제조업체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3D 기피업종을 외국인 노동자가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우리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이 흔들리게 됐다.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다. 노동연구원의 외국노동인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 인력 비중이 2% 수준일 때 경상 GDP는 0.24%포인트, 4% 수준이 되면 0.297%포인트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우리나라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약 120만명. 이중 취업을 위해 체류 중인 외국인은 40%, 불법체류 외국인은 20% 정도 각각 추정된다. 즉 국내 불법체류자는 24만명 수준이다. 이들이 대부분이 국내에 일하러 들어온 사람이라고 보면 결국 취업 중인 외국인의 절반 정도가 불법체류자인 셈이다.
이들은 합법적인 근로자를 밀어내고 임금구조를 왜곡하는 등 고용시장의 혼란을 초래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우리 경제의 저변을 받치는 필수 인력이 됐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 사회적 약자를 품어 앉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모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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