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사 애널들은 밥값하나"

박영암, 시장총괄데스크  | 2008.12.01 10:47

[마켓와치]"글로벌 네트워크 부재로 기관 눈높이 충족 한계"

지난해 고점대비 반토막 난 종목들이 수두룩하다. 조선 철강 해운 기계 등 2000시대 주역들은 대부분 60% 이상 급락했다. 기관과 개인들이 주가 급락원인을 찾느라 동분서주하는 상황에서도 국내증권사들은 태평하다. 5월 이후 국내증시가 본격적으로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주가하락을 예상하는 매도 보고서 발간에 인색했다. 내년도 전망도 기대감을 갖자는 낙관 일색이다. 세계경제 침체를 반영한 매도 보고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와 대조적으로 외국계 증권사들은 과감히 매도의견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경기전망에 입각한 이들의 매도 보고서는 시장에서 큰 반향을 불러왔다. 매도 리스트에 오른 종목들의 주가는 요동쳤다. 하루아침에 수천억원대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11월에도 LG전자(씨티증권) 하나금융지주(JP모간) 기아차(모건스탠리) GS건설(CLSA) 대한항공(골드만삭스) 등이 외국계 매도 보고서에 홍역을 치렀다.

외국계 득세는 국내증권사의 리서치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던지고 있다. 생존조차 장담 못하는 외국계 IB들이 국내증시를 쥐락펴락하는 현실에 국내 애널리스트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주장이 점차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리서치 자료의 최종 수요자인 펀드매니저들은 애널리스트의 "어설픈 동업자 의식이 국내 증권사의 신뢰상실을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애널리스트들이 기관 보유종목에 대해 매도의견을 기피하는 관행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매도의견을 발표하지 않은 것이 결코 펀드매니저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국내사들이 침묵해도 외국계가 매도의견을 내면 파장이 더 커지는 현실을 직시하자고 주문한다. 이들은 애널리스트들이 향후 실적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이에 기초한 투자의견을 적절한 시점에서 소신껏 발표할 때 시장과 펀드운용에 도움을 준다고 강조한다.

펀드매니저들은 또한 ‘한국적 현실론’도 더 이상 변명거리가 안된다고 말한다. 애널리스트들은 시가총액 상위종목들을 매도의견 낼 경우 기업방문 정보제공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하소연 했다. 기업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를 위해 매도의견 자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이같은 현실론은 더 이상 용납되기 어렵다. 대다수 펀드매니저와 개인투자자들은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 못하는 애널리스트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증권사와 기관, 상장기업간에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 못지않게 경험부족과 글로벌 네트워크 부재도 국내사의 시장 영향력 약화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최근 만난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국내 애널리스트의 경험 부족이 올해 같은 약세장에서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국내 리서치시장의 주축인 30대 초중반의 애널리스트들이 2002년 이후 상승장만 경험했기 때문에 약세장 대응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특정 산업이나 개별기업의 경기 사이클을 두루 경험하지 못해 실적추정에서 한계를 보인다는 평가다. 단순히 호황 때보다 매출이나 영업이익을 몇 % 더 하향조정하는 것만으로는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상황에 걸맞는 기업분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증권사의 글로벌 네트워크 부재도 외국계에 밀리는 주원인으로 꼽힌다. 국내사들은 글로벌 네트워크 확보면에서 글로벌IB에 비해 열세다. 기껏해야 홍콩 싱가포르 정도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이같은 한계로 외국계에 비해 글로벌 매크로 변수 예측능력이 뒤처진다. 반도체 철강 조선 금융 등 시가총액 상위업종의 시장예측에서도 외국계에 비해 한수아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은행계 자산운용사의 팀장급 펀드매니저는 “애널리스트 개개인만 놓고 본다면 외국계가 국내사들보다 결코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매크로 전망 등에서 국내사들을 압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령 국내사는 철강업종을 한두명이 커버하지만 외국계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시장정보를 취합, 국내 기관들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당연히 펀드운용 에서 외국계 정보가 훨씬 도움이 된다고 인정했다.

이같은 지적에 국내사 애널리스트들도 할 말이 참 많다. 17년 경력의 한 애널리스트는 상당기간 자유롭게 매도의견을 밝히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특히 요즘처럼 생사 갈림길에 놓인 기업들이 많은 상황에서 '매도'의견은 가급적 회피하고 있다고 들려줬다. 하나금융지주에 대해 매도 보고서를 발표한 JP모건을 금융감독원이 구두경고 한 현실에서 매도의견 발표에 따른 파장을 뒷수습할 자신이 없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외국계가 국내사들보다 항상 질적으로 우수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근 자주 발견되는 50%이상의 목표가 조정은 애널리스트의 기본 자질을 의심케 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외국인 투자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어 국내기관이나 개인투자자 이해와 다소 거리감이 있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하지만 이같은 외국계의 한계가 곧바로 국내사들의 영향력 강화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외국계 영향력은 당분간 더 지속될 전망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글로벌 실물침체와 금융위기를 분석, 전망을 제시할 능력이 국내사는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삼성 미래 등 일부증권사가 아시아지역에 리서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지만 국내 기관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여의도의 중론이다.

국내사들의 매도의견 발표를 제약하는 현실도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워 보인다. 정부조차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2%대로 추정하는 상황에서 애널리스트의 매도주장이 안팎의 압력을 받는 것은 명약관화하기 때문. 하지만 국내사들이 현실에 안주할 경우 반드시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보다 5배나 많은 인력을 보유하고도 시장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한다면 CEO들은 애널리스트의 억대 연봉을 부담스러워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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