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구조조정' 갈피 못 잡는 이유

머니투데이 서명훈 기자 | 2008.11.27 09:10

"은행과 기업 위상 바뀌고, 기업 상처도 다르다"

정부가 건설사 등 기업 구조조정을 놓고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구제금융과 구조조정의 경계가 모호해 지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 때문에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 당국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원인부터 다르고 경제 여건도 외환위기 때와 크게 달라졌는데 당시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 은행 vs 기업 ‘뒤바뀐 갑과 을’ =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은행이 기업들의 재무 상태를 속속들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설사 대주단 협약에서 나타났듯 채권단을 통한 구조조정 작업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주채권은행이 기업 재무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며 "하지만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 나면서 대기업들이 은행 대출에 의존하지 않게 됐고 기업에 대한 정보가 차단됐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기업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 각종 재무정보를 제공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은행이 기업들에게 자금을 갖다 쓰라고 통사정을 하는 분위기였다. 갑과 을이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금융당국의 판단도 다르지 않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최근 일부 건설사에 대한 부도설이 나돌 때 주채권은행을 통해 재무상태를 파악하려 했었다"며 "하지만 기업어음과 회사채 발행을 통해 대부분 자금을 조달하고 있어 주채권은행도 재무상태를 잘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은행 의존도가 현저히 줄어들어 채권단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이 과거처럼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변방으로 밀려난 기업여신= 은행들이 기업대출보다 가계대출에 주력한 것도 이 같은 현상을 부채질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복잡한 기업의 재무상황을 파악하려면 오랜 경험이 필요한데 기업대출 쪽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가계대출 쪽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달라진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은행의 대출에서 가계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가계대출비중은 2000년말 30%를 겨우 넘겼지만 불과 2년 만에 다시 40%대로 뛰어 올랐다. 최근에는 가계대출이 전체 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관심도 기업에서 가계로 옮겨진 지 오래다. 2002년 카드 사태를 시작으로 주택담보대출 열풍이 불면서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관리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단적인 예로 금감원은 올해 조직을 개편하면서 기업여신을 담당하던 신용감독국을 신용서비스실로 대폭 축소했다.

◇"지금은 환자를 돌볼 때"= 금융당국이 쉽게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상태가 다르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이미 부도가 났거나 사실상 문을 닫기 일보 직전의 기업들에 대해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지금은 일시적인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이 상당수다. 과거 구조조정이 일종의 '시체'를 처리하는 것이라면 지금은 환자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과거처럼 부채비율 등 단순한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며 “대부분 기업들이 일시적인 자금지원만 있으면 살아날 수 있다고 하는데 정부가 어떻게 강제적으로 문을 닫게 만들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채권단 역시 기업의 재무상황을 알지 못하다 보니 기업의 회생가능성을 판단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부의 모호한 입장이 더해지면서 채권단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건지 원칙에 따라 정리할 기업은 과감하게 퇴출시키라는 것인지 혼란스럽다”며 “채권단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부가 기준을 명확히 정해주지도 않은 어정쩡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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