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보다 떨어진 집값, 경매서도 외면

머니위크 이재경 기자 | 2008.11.30 04:06

[머니위크]천덕꾸러기 된 강남 부동산

'불패신화'를 자랑하던 강남의 아파트값이 크게 빠졌다. 불과 1년새 수억원씩 추락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급매물보다도 수천만~1억원 이상 싼 '급급매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급하게 집을 팔기 위해 내놓은 급급매물에는 집주인의 어떤 사정이 담겨있을까.

◆은행도 경매 포기

강남구 대치동의 개포우성아파트에서 최근 102㎡형(31평형)이 11억8000만원에 매물로 나왔다. 개포우성 102㎡형이 12억~13억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는 점에 비하면 다소 싼 가격이다.

이 집은 당초 법원경매에 부쳐질 예정이었다. 집주인이 이 집을 담보로 빌린 은행빚을 갚지 못하고 연체를 계속해왔기 때문이었다. 은행은 담보인 집을 경매로 팔아 채권을 회수하려 했다.

그런데 은행은 돌연 경매를 취소했다. 그냥 매매를 통해 채권을 회수하기로 집주인과 합의를 본 것.

이 집 소유자는 다른 집 한채와 함께 공동담보로 은행에서 12억원이나 빌렸다. 몇 해 전 부동산 경기가 좋았을 때에는 은행에서도 담보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최근 집값이 수억원씩 빠지면서 문제는 달라졌다. 집을 제 가격에 팔아도 은행빚을 갚기 벅찬 수준이 돼 버린 것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당장 경매를 통해 채권을 회수하고 싶지만 채권에서 많은 손실을 봐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법원경매는 감정가격을 기준으로 시작하며 유찰이 될 때마다 20%씩 최소입찰가격이 떨어진다.

실제로 요즘 경매시장에서 강남지역 아파트는 실거래가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1월초 경매에 나온 대치동 청실아파트 102㎡형의 경우 본래 감정가는 11억원이었으나 유찰이 거듭되면서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결국 낙찰가격은 8억1500만원이었으며 낙찰가율도 74.1%에 불과했다.

강남지역의 대표적인 재건축 대상인 은마아파트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최근 경매에 나온 은마아파트 112㎡형은 감정가가 12억5000만원이었다. 한차례 유찰되면서 2억5000만원이 낮아진 10억원의 최소입찰가격으로 다시 경매에 나왔으나 또 외면받았다. 결국 8억원으로 몸값을 낮춰 12월 11일에 열리는 다음 경매를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내집에서 전세로 살게 해주세요"

8억2000만원에 급매물로 나온 대치동 청실아파트 102㎡형은 매매조건이 붙었다. 전세를 끼고 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전세는 현재의 집주인이 들어간다는 조건이다.

현재의 집주인은 이 집을 구입하면서 7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집값이 10억원을 훌쩍 넘었으니 이 정도 대출은 쉽게 받을 수 있었다. 물론 2금융권의 후순위 담보대출도 함께 받았다.

그러나 그동안 지속적으로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게다가 집값은 예전에 비해 크게 빠지고 있다. 집값이 여기서 더 빠지게 되면 집을 팔아도 금융권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될 판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급매물로 내놓았지만 자녀 교육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갈 엄두는 못내는 형편이다. 자신의 집을 팔아 빚을 상환하고 자신의 집이었던 곳에서 전세로 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대치동 S공인 관계자는 "요즘 나오는 급매물 중에는 전세를 끼고 사 달라는 요청을 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경기가 나빠지고 대출이자상환 부담이 커지니까 자신의 집을 전세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투자자금, 펀드에 잃고 묶여"

강남 부동산중개업소들은 한산하다. 손님이 거의 없다. 집을 내놓는 경우는 있지만 매수하겠다고 나서는 투자자들이 없다. 그 많던 부동산 투자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대치동 K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2~3년전만 해도 하루에 서너건씩 거래를 맺어줬다"며 "그러나 요즘은 한 달에 한 건 하기도 힘들고 대치동 일대에서 한 달에 한 건의 실적도 없는 중개업소들이 수두룩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돈을 들고 강남 부동산투자처를 찾아다니는 고객들이 꽤 있었다"며 "이 투자자들 대부분은 펀드광풍 속에서 펀드에 투자했다가 상당한 자금을 날렸고 반토막난 펀드를 환매할 수도 없으니 지금 당장은 부동산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것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강남에서 근무하는 한 은행 PB 역시 비슷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 PB는 "펀드에 투자해서 아직까지 보유하고 있는 고객들의 항의를 받는 경우가 많다"며 "큰 손실이 난 펀드를 갖고 있는 고객은 환매를 고려할 수 없는 처지인 경우가 많고, 환매하더라도 대부분 안전자산만 찾아 부동산 투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남부자들, 안전한 은행으로

그렇다면 부동산투자에 열중했던 강남부자들은 요즘 어디에 관심을 쏟고 있을까.

지금 강남부자들의 관심은 원금손실이 없는 안전한 은행상품에 쏠리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들도 '맞춤상품'들을 많이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은행에서 발행하는 후순위채권이다. 은행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고객입장에서는 높은 금리를 노릴 수 있다. 10년 이상 투자하면 비과세혜택도 받을 수 있다. 다만 원금보장이 안된다는 게 약점이다.

국민은행과 외환은행 등이 후순위채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최근 외환은행에서 판매한 후순위채권은 5년 6개월 만기에 연7.7%(실효수익률 연 7.92%) 조건이었다. 1인당 1000만원 이상 가입할 수 있다.

농협중앙회에서도 농금채를 판매하고 있다. 농금채는 보통 기관투자자들이나 고액자산가들만을 상대로 발행해왔었다. 올 8~9월께 나왔던 농금채의 최소 판매금액은 10억원이었다.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는 투자하기가 쉽지 않은 수준이다. 그런데 농협이 11월 28일 새로 판매하는 농금채는 1000만원부터 100만원 단위로 투자할 수 있다. 강남부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셈이다.

이지연 농협 강남PB센터 팀장은 "안전한 투자를 원하는 고객인 경우 포트폴리오에서 정기예금이나 양도성예금증서(CD), MMF 등의 비중이 높다"며 "여유가 좀 있으신 분들은 은행의 후순위채권에 투자하는 것도 방법"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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