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펀드 판매사나 운용사에는 자신이 투자한 채권형펀드에 회사채나 CP(기업어음)가 편입돼 있는지, 부도 위험은 없는지를 묻는 투자자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또 회사채 편입을 확인하고 환매를 요청하는 투자자들도 잇따르고 있다. 환매 연기 우려가 실제 환매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운용사들은 채권형펀드의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투자자들의 환매가 계속되고 있지만 회사채 시장의 개점휴업으로 유동성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17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이달들어 이미 13개 채권형펀드가 환매 연기되는 등 대규모 환매 연기 사태가 현실화되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건설사 자금난이다. 시공능력평가 41위인 신성건설의 유동성 위기로 도이치투신의 채권형펀드 9개가 잇따라 환매를 연기했다. 신성건설이 만기 도래한 회사채의 원리금을 갚지 못하자 불가피하게 환매를 연기한 것이다. 결국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신성건설은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채권형펀드 투자자들은 원금 손실을 입게 됐다.
최근에는 대우차판매 관련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에 투자한 채권형펀드 4개가 연이어 환매 연기를 결정했다. 플러스자산운용의 ‘플러스탑시드채권혼합160’, 알파에셋자산운용의 ‘알파에셋위너스채권형1' 시리즈가 바로 그것. 이들 펀드는 대우차판매의 유동성 위기 소문에 투자자들이 대거 환매에 나섰지만 시장에서 회사채 거래가 안돼 운용사가 환매를 중단했다.
플러스자산운용 고위관계자는 “대우차판매에 대한 우려로 고객들이 환매를 요청하고 있지만 회사채 거래가 뚝 끊겨 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회사채를 팔더라도 헐값에 팔아야 하는 등 공정한 자산평가가 불가능한 상태라 환매 연기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회사채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여타 운용사들도 채권형펀드의 환매 대책에 비상이 걸렸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10월말 기준 순자산 대비 회사채와 CP 편입 비중이 60% 이상인 채권형펀드는 총 330개로 설정액은 2조834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용사별로는 아이투신운용이 72개로 가장 많은 펀드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고, 교보투신 49개, 동양투신 35개, 흥국투신 29개, 삼성투신과 KTB자산 각각 12개 순이었다.
문제는 회사채 편입비중이 높은 채권형펀드 상당수가 환매에 대비한 유동성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다. 환매가 일시에 몰릴 경우 대규모 환매 연기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실례로 교보투신과 동양투신의 전체 채권형펀드의 유동성 비중은 각각 2.75%, 3.51%에 불과한 실정이다.
자산운용사 한 채권펀드매니저는 “건설사, 중소기업들의 연쇄 부도 위기로 신용리스크가 확대되면서 누구도 회사채를 사려하지 않고 있다”며 “유동성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대거 환매를 요청할 경우 환매 연기 사태가 속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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