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것에서 찾은 삶의 쉼표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 2008.11.24 12:19

[머니위크]기자수첩

늦가을 쌀쌀한 날씨에도 벼룩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시내의 유명 백화점이나 명품 매장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지만 물건을 고르는 구매자들의 열기는 그에 못지 않다. DSLR 카메라를 목에 건 자칭 사진작가들도 작품을 건지기 위해 이리저리 렌즈를 들이댄다.

아버지가 7살짜리 아들과 쪼그려 앉아 "이게 내가 네 나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라며 구슬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은 정겹기 그지없다. 판매자들은 하루를 공치더라도 찡그리는 법이 없다. 옆 좌판 아가씨와는 10년지기 친구보다 가까워진다. 화폐가 없던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물물교환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오랜만에 찾은 서울시내의 유명 벼룩시장은 2년 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수익금의 일부를 불우이웃에게 전달하겠다는 주최 측의 멘트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은 듯하다. 가끔가다 벌어지는 외국인 장터나, 어린이 장터 등 이벤트성 벼룩시장이 생긴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벼룩시장의 묘미는 쓸만한 물건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고가 갖는 편견을 깬다면 헌 물건에서도 새것 이상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리폼의 대가들이 모여 있는 네이버 카페 ‘레몬테라스’의 작품을 보면 기존에 버려진 제품들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마치 기존의 물건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듯하다. 이 제품들은 벼룩시장에서도 인기가 높다. 헌 것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부여하는 것은 이 시대 불황을 극복하는 전략 중 하나다.


삶의 여유와 인간미가 넘치는 정경이야 말로 벼룩시장을 다시 찾게 만드는 또 다른 마력이다. 부모들과 함께 온 아이들은 자녀와 손잡고 소풍을 온 듯하다. 물건에 나름의 가치를 매기는 법을 배우고 필요한 물건과 필요 없는 물건을 구분하는 능력을 기른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같은 곳에서만 물건을 골라본 어린이들은 벼룩시장에서 또 다른 차원의 경제를 발견한다.

벼룩시장의 현장은 주중에 느꼈던 도시의 각박하고 바쁜 일상과는 다른 세상이다. 깊은 불황때문에 곳곳에서 아우성인데 이곳 시장은 오히려 생동감과 활력이 넘친다. 세상과 거꾸로 가면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시장이다. 소유보다 향유를 즐기면 마음도 가벼워지나 보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산보를 핑계로 주말에 한번 더 다녀와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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