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구경 가물에 콩 나듯"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 2008.11.28 04:04

[머니위크]르뽀/종로 귀금속 상가

“요 옆에 XX보석전문상가 있잖아요. 그곳의 한 매장 주인은 오늘까지 5일째 개시를 못했다고 하소연 하더라고요. 요즘 들어 호객행위가 부쩍 심해져서 대로변에서 떨어져있는 매장에서는 손님 구경을 못한대요.”

경기침체의 된서리를 맞은 2008년 11월 종로 귀금속 상가의 풍경은 평소의 활기를 잃었다. 상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지난주 장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최근 들어 호객행위가 심해졌다고 토로했다. 특히 도로변 매대들의 호객행위로 입구에서 손님을 채가다 보니 반대편 쪽 매대는 하루를 공치는 날이 많아졌다.

“아주 열불 나 죽겠어요. 입구에서 손님들을 채가니 안쪽으로 손님이 없어요. 지난주에도 이 근방에서 세곳이나 철수했을 정도니까요.” 전문상가 안쪽의 한 매장 주인은 지난 한주는 출근해서 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퇴근한 적도 있다고 한다.

반면 입구 쪽 매대는 자리가 없다. 노출이 잘 돼있고 호객이 용이해 꾸준하게 손님이 들른다. 최근에는 대로변 길이 2m, 폭 1m에 불과한 매대 자리가 1억7000만원에 나왔다. 순순히 권리금 가격인데도 자리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이곳 상인들의 말이다.

“고민 좀 해보려고요. 적은 돈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매장 안쪽 후미진 곳에서 영업하는 김진수(39·가명) 씨는 이 같이 말하며 담배를 물었다.

◆보안비용 오르고, 절도수법 기상천외

종로의 코너변에 위치한 한 귀금속 매장의 박규옥(48·가명) 씨는 "매출도 오르지 않는데 보안비용이 늘어났다"며 하소연이다. 이 일대 상인이 대부분 가입해있는 S보안업체가 보안비을 6개월 전부터 월 9만원에서 16만원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반발하고 있지만 다른 회사로 옮기기에는 부담이 더 크다. 보안장비 해체비용과 다른 보안회사 가입비·설치비 등을 고려하면 교체를 안 하는 편이 오히려 싸다.

귀금속 상가에 보안설치를 안하는 것은 안장 없이 말을 타는 것과 같다. 특히 박씨처럼 단독매장을 운영하는 곳은 절도범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낮 시간에는 감시카메라가 유일한 보안책인만큼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박씨도 그동안 당했던 황당했던 절도사건의 유경험자다.

박씨는 얼마 전 전문 '네바다이'(교묘한 속임수로 금품을 빼앗는 행위)꾼에게 300만원 가량의 금품을 도단 당했다.

“휴일 오전 캐주얼 복장을 한 30대 남성이 들어와 고가의 물품들을 고르고 있었어요. 갑자기 동료로부터 전화가 왔나 봐요. 일행에게 주차지역을 설명하다가 상점 앞으로 나가서 손짓을 하더군요. 손님이 금목걸이를 차고 있었지만 명품으로 보이는 가방이랑 짐들이 매장에 있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런데 차 쪽으로 갔던 남자는 종적을 감췄어요. 매장에 있던 짐들은 싸구려에 빈가방이었고 여자 혼자 매장을 비워두고 따라가기도 무서워서 아무런 대응도 못했죠.”

감시카메라에 번듯하게 찍혔어도 공개수배가 아닌 이상 용의자 검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다.

“또 한번은 고급 팔찌를 포장해 달라고 한 남자가 왔는데 포장 도중에 제 뒤에 있는 은수저의 가격을 물어보더라고요. 물건을 보여줬더니 됐다고 해서 팔찌 포장을 계속 했죠. 갑자기 그 남자가 현금이 없다면서 현금인출기의 위치를 물어보고는 금방 다녀오겠다고 했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길래 다시 전시하려고 포장을 뜯는 순간 당했다는 걸 깨달았죠.”

텅빈 보석함을 보고서야 박씨는 자신이 은수저 세트를 보여주는 사이 남자가 보석만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몰랐던 박씨는 텅빈 보석함만 정성스레 포장해서 손님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이 외에도 박씨는 젊은 여성의 전시용 상품 절도나 아침시간 도난카드를 내밀고 도주하는 행위, 귀금속을 한 가방 들고 와 매입해달라는 장물거래를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귀금속상에서 가족을 보다

귀금속은 가족과 밀접해 있다. 60줄에 들어선 할머니는 새식구가 된지 1년이 된 손자의 돌반지를 사고, 예비 신혼부부들은 새로운 가족을 꾸리기 위해 귀금속을 찾는다.

현장에서 만난 권순례(71·가명) 할머니도 손녀딸의 돌팔찌를 위해 귀금속상을 들렀다. 11월10일 기준 금시세는 1돈(3.75g)에 약 12만원. 권 할머니는 가방에서 휴지 한 뭉큼 꺼내 소중하게 하나씩 폈다.

“기미가 안 낀다고 해서 몇해 전에 맞춘 금반지인데 이거 녹여서 쓸 수 있죠?” 권 할머니의 휴지에는 1.5돈의 금반지가 싸여 있었다.

2돈짜리 금팔찌의 가격은 25만원 정도. 권 할머니는 금반지 덕분에 6만9000원의 추가 비용만 들었다. 반돈 가격 6만원에 2000원의 해리비(녹이는데 드는 비용)와 7000원의 수공비용이 포함된 금액이다.

‘금 값 비싸다는데 이렇게라도 손녀딸 돌선물을 해야지 어쩌겠느냐’는 권 할머니는 잔금을 치르고 매장을 나섰다.

'나까마'(덤핑물품 등을 구매해 소매상에 넘기는 상인) 생활을 하다가 종로에 매장을 냈다는 22년 경력의 한 상인은 보석상에 오는 사람들을 보면 경제력을 떠나 가정의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부모가 형식에 얽매인 집안일 수록 예산은 적게 잡고 반지, 목걸이, 팔찌, 귀고리 등을 모두 갖추려 한다.

시어머니가 직접 집안이 어려운 며느리를 데려와 좋은 보석을 골라주는 모습도 있다. 신부 어머니가 미리 매장을 방문해 ‘요즘은 이 가격대로 많이 한다고 말해 달라’고 언질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양가에서 예물의 금액이 맞지 않아 다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심지어 파혼에 이르는 사례도 있다. 경제력이 부족한 집안에서는 집안 보석을 다 들고 와서 파는 눈물어린 광경도 종종 목격된다.

이 상인은 최근 젊은 사람들은 형식보다는 의미를 더 중요시해 간편하게 단품으로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신랑·신부가 모두 의사임에도 큐빅 박힌 반지 하나씩만 교환한 예비부부가 가장 인상적이었단다.

이 상인은 “젊은 부부들은 직장 내에서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귀금속을 착용하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면서 “종로를 찾는 신혼부부는 부유층이 아니며 이들 양가의 평균 예물비용은 500만원대 안팎”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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