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의 위험한 유산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 2008.11.13 12:21

[CEO에세이]'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는 손’을 넘어

미국 힘의 상징인 거대 투자은행들이 굉음을 내며 무너졌다. 마치 천재지변 같았다. 비행기 테러에 폭삭 주저앉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같았다.

공적자금으로 허둥지둥 땜질하고 있다. 투자은행 국유화와 재정확대가 이어졌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이윽고 미국의 ‘경제대통령’으로 칭송받던 앨런 그린스턴 전 연방준비이사회 의장(FRB)이 청문회에 불려 나왔다. 시장숭배에 대한 실패를 자인하며 82세 물신(物神)의 노(老)사제는 참회했다. “40년 이상 믿어온 경제 이론에 허점이 있었습니다.”
 
그린스펀은 지난 1997년부터 2006넌 1월까지 FRB의장을 역임했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검은 화요일(1987년의 주가대폭락)’과 90년대 후반의 아시아 경제위기, 2000년대 초반의 닷컴붕괴 등을 저금리 정책으로 타개해 나갔다.
 
하지만 저금리는 모두를 흥청망청 미치게 했다. 대출을 받아 부동산 투기라는 탐욕에 몰두케 했다. 사람들은 원하는대로 얼마든지 소비하고 미래의 것까지 미리 끌어다 써 왔다. 레버리지(자금차입)을 통한 복잡한 파생상품은 탐욕을 부추겼고 결국 모두를 기만했다. 그것은 괴물이었다.
 
◆과소비와 과소유는 모두 탐욕과 기만에서 출발
 
투자은행 전문가들은 천문학적인 연봉을 즐겼다. 그런 고삐 풀린 탐욕에 대한 규제를 그린스펀은 묵살한 것이었다. 그래서 티베트의 종교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현재 지구촌 금융위기는 거짓과 기만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했다.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한 존스 홉킨스대학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도 “절약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청교도 정신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오래간 미국인의 가구 저축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국인도 다른 아시아 국가처럼 과거에는 열심히 저축했다. 하지만 어느새 미국화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금융위기로 신뢰를 잃었다. 문제는 대안이 없다는데 있다”고 개탄한다.

사실 한국인들의 과소비 역시 재앙에 가깝다. 4800만 국민에 핸드폰 가입자가 4500만 명에 이른다. 말 못하는 갖난 아이와 중병환자를 빼면 두 개 이상 핸드폰을 소유한 사람만 몇 백만에 이른다.

자동차는 어떤가. 2007년 기준으로 1600만대가 넘는다. 이 판에 요즘 내수진작을 위한다고 자동차 특소세를 대폭 내리겠다고 한다. 여전히 자동차를 쏟아 붓겠다는 것이다.


주택 수는 어떤가. 한 가구당 한집 꼴인 1500만 채에 달하고 그중 아파트가 반이다. 이러고도 아파트 500만호 건설을 외치고 있다. PC는 2000만대를 육박하니 2~3명 중 1대 꼴이다. 환자 빼고 갖난아이 빼고 모두 PC를 두드리고 있는 형국이다.

공기업 이를테면 산업은행 평균 연봉은 9000만원이 넘는다. 과연 ‘신의 직장’이다. 은행장 연봉이 보통 성과급을 제외하고 7억~10억원에 달한다. 미국 투자은행 임직원 연봉을 뺨치는 꼴이다. 이렇게 흥청거려 댔다.
 
◆이제 신자유주의가 막다른 골목에 있어
 
그린스펀에 대한 비판은 사실 오래전부터 있었다. 노밸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컬럼비아 대학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린스펀의 정책 혼란으로 미국경제가 대공항 이후 80년만의 금융위기를 맞았다.”

경제학자인 라비 바트라 교수도 최근 저서 ‘그린스펀 경제학의 위험한 유산’을 통해“그린스펀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하지 않고 빚을 늘리는 미봉책 저금리로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작은 위기를 더 큰 위기로 막아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유시장이라는 이름 아래 중산층과 가난한 사람들 보다는 결과적으로 부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쳐왔다. 결국 라비 바트라 교수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붕괴 후 동양사상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미‘공산주의의 붕괴’를 적중시킨 그의 말이어서 무겁다.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에 의한 아담스미스의 자본주의는 고전이다. 그러나 지난 세기를 강타한 대공항과 2차대전의 폐허 때문에 ‘보이는 손’인 정부의 케인즈가 있어 보완될 수 있었다. 역시 과도한 재정지출과 성장한계는 밀튼 프리드먼과 레이건의 신자유주의를 등장시켰다.

이제 그 신자유주의가 탐욕의 쓴 잔을 들이킨 채 막다른 골목에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건 ‘보이는 손’이건 그것들은 모두 서양의 보편인 ‘개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래는 ‘두 손’을 넘어 동양의 보편주의인 ‘관계’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떨까.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정부와 NGO, 정부와 시장, 성장과 환경, 선진국과 신생국, 동과 서, 남과 북, 이런 ‘관계’에서 출발하는 것은 어떨까.(한국CEO연구포럼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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