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으로 시련딛고 희망의 불을 지핀다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 2008.11.13 09:10

[머니위크]현대그룹 금강산 관광 10주년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그리운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한상억 시, 최영섭 곡의 국민가곡, <그리운 금강산>이다. 이제는 이 노래가 예전보다 덜 애닳다.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누구나 꿈에 그리던 금강산을 직접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세기 동안 철저하게 막혀있던 금강산 금단의 벽이 열린지 만 10년이다. 10년 전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고, 대단한 역사였다. 그러나 그 이후 10년의 역사 또한 정치논리와 경제논리 사이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현대는 특유의 뚝심과 집념,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그 10년을 헤쳐 왔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은 또 어떤 역사를 만들까?

◆소떼의 기적 10년을 맞이하다

1998년 11월18일 ‘현대 금강호’에 오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벅찬 감동에 휩싸였다. 자신을 포함해 현대 임직원 및 관광객 889명과 승무원 466명 등 1365명을 태운 ‘현대 금강호’가 동해항을 떠나 북한의 장전항에 도착하는 역사의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철통같은 북녘 땅을 자신의 손으로 열었기에 누구보다 감회가 새로웠다. 게다가 장전항에 도착한 첫 손님으로 관광객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북녘 땅을 밟았다. ‘몽상’이라는 비난에도 꿋꿋이 황소같은 뚝심을 발휘한 정주영 명예회장의 대북사업이 첫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관광 목적으로 남한의 민간인이 북한을 방문한 첫 번째 기록이었으며 국내외 언론은 이를 ‘세기의 사건’으로 보도했다.

그해 6월 정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은 대북 소통의 귀중한 밑거름이 됐다. 어릴 적 가난이 싫어 소를 판 돈을 가지고 무작정 상경했던 한 기업인이 통일의 단초가 되는 중요한 개척사업을 벌인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이날 판문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묵묵히 일 잘하고 참을성 있는 소를 성실과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삼고 인생을 걸어왔다”면서 “이제 상경을 위해 판 소 한 마리가 천마리의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 간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정 명예회장에게는 소떼 방북이 대북사업의 협상 카드일 뿐 아니라 어렸을 때 저지른 작은 과오를 뉘우치는 또 하나의 의미였던 것이다. 게다가 냉전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해 방북한 점은 통일을 위한 진일보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는 소떼 방북에 대해 “개인의 단순한 고향방문을 넘어 남북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길 기원한다”며 이날 방북이 대북관계개선의 씨앗이 되기를 희망했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인 기소르망이 이 사건을 두고 ‘20세기 마지막 전위예술’이라고 평가한 것만 봐도 정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의 의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금강산관광을 보는 세가지 관점

현대의 대북경협사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세 가지다. 통일에 대한 선구자적 역할, 정주영 명예회장의 숙원사업, 통일 후 벌어질 각종 사업권의 선점 등이 그것이다.

일각에서는 현대그룹의 대북경협사업은 통일을 위한 불가피한 기회비용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DJ 정부의 햇볕정책과 맞물려 현대의 대북사업이 꽃을 피웠지만 대북송금사건과 관련한 정몽헌 회장의 죽음 등은 통일의 과도기에서 현대가 치른 비극적 기회비용이었다는 것이다.

여권과 일부 보수단체에서 주장하는 ‘퍼주기 논란’은 그동안 참여정부와 현대그룹이 같은 코드를 맞춰옴에 따라 제기된 지적이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대북경협사업의 진정성을 주목해 달라고 당부한다. 고 정몽헌 회장이 생전에 “현대그룹을 이익창출을 위한 기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국가경제를 선도하는 국민기업으로 인식해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자 온 힘을 다했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대북사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크게 인식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남북이 서로 화해하고 협력하지 않고는 세계에서 한국의 도약이 어렵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자신이 그 짐을 짊어지겠다며 노구를 이끌고 북한 다녀오곤 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1999년 사장단 신년하례에서 “금강산 관광사업을 실현시켜 국민에게 통일에 대한 희망과 남북이 처한 경제난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한 것은 우리 현대만이 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업적”이라고 자부심을 고취시키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의 이러한 염원은 아들인 정몽헌 회장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정 명예회장은 정몽헌 회장에게 대를 이은 대북사업에 대한 열망을 여러 차례 동행 방북을 통해 보여줬다.

현대그룹에 대한 부러운 시선은 향후 통일한국 이후의 현대의 위상과 무관치 않다. 현대그룹의 대북투자자산의 보유현황에 따르면 현대는 금강산 관광지구 토지이용권 등 각종 사업권을 최고 50년간 누릴 수 있다.<표 참조>

그러나 이 같은 사업 선점도 남북관계의 개선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현대가 속앓이를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 현대그룹은 통일론과 반공론, 혹은 경제논리 사이에서 남북경협사업의 의미가 흔들리기도 하고,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논란의 중심에서도 현대그룹은 대북경협사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가풍’인 특유의 끈기와 인내는 현대가 대북사업을 놓지 않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현대아산, 위기에서 희망 찾겠다

남북경협사업을 진두지휘하던 정 명예회장이 2001년 3월 80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왕자의 난을 겪은 현대그룹은 분가 과정을 거쳤고, 정몽헌 회장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사업을 이어나갔다.

2003년 2월 금강산 육로관광합의라는 성과와 6월 개성공단 착공 등 남북경협사업의 추진속도가 빨라지던 때 뜻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났다. 8월 정몽헌 회장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불굴의 의지만큼은 대단하다. 어쩌면 현대가에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창업주의 지론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인물인지도 모른다.

남편의 사망소식,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정몽준 의원으로부터의 경영권 방어전,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비리연루의혹,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한 금강산 관광 침체, 현 정부의 대북관, 고 박왕자 씨 피살사건과 금강산 관광 중단, 김정일 국방위원장 중병설 등 현 회장은 취임 이후 단 한순간도 평안할 날이 없었다.

그럼에도 현 회장은 소신과 뚝심으로 험난한 파고를 넘었다. 현재 위기 상황이라는 주위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M&A의 블루칩인 현대건설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도 현 회장이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다. 시아버지와 남편의 한을 푸는 열쇠는 바로 현대건설 인수에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 회장은 10·4공동선언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통해 백두산 관광과 개성 관광, 비로봉관광에 합의하는 성과를 얻었다. 곧이어 고려 500년 도읍인 개성 관광과 승용차로 금강산관광을 실현시키며 역경 속에서 값진 성과를 이뤄냈다.

현대그룹은 11월18일이면 금강산 관광 10주년을 맞는다. 언제나처럼 사업의 존폐를 우려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금강산 관광은 4개월이 넘게 중단된 상태다. 매출손실액도 갈수록 커진다.

이 같은 위기에도 현 회장은 평소처럼 차분한 대응과 함께 내실경영을 꾸리고 있다. 금강산 관광 중단을 해결하기 위해 조건식 전 통일부 차관을 현대아산 사장으로 임명해 북한과의 소통에 힘쓰는 한편 지난달 취임 5주년을 맞아 현대증권 이사회 의장에 오르며 조용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현 회장은 2012년까지 매출 34조원을 목표로 하는 ‘비전 2012’을 제시한 바 있다. 이 목표를 위해 현대그룹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매듭은 금강산관광재개와 현대건설 인수다. 특히 금강산관광은 현대그룹의 상징성을 가진 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현대그룹 측은 금강산 관광이 10년간 놀라운 성과를 이룬 만큼 지금의 위기를 이겨내고 남북관계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각오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 회장이 대북사업 등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긍정적인 신념으로 위기를 극복해왔다”며 “10년간 온갖 역경도 이겨낸 만큼 희망찬 100년의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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