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루빈의 재집권을 주목한다

더벨 박준식 기자 | 2008.11.06 08:32

오바마 경제고문 루빈 행보에 관심

이 기사는 11월05일(13:27)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 로버트 루빈(Robert Rubin)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능했던 재무장관으로 꼽힌다. 1993년 백악관 국가경제회의(NEC) 보좌관으로 클린턴 행정부에 참여했고, 95년 재무장관에 발탁돼 99년까지 재무부를 이끌었다.

# 1938년 뉴욕에서 가난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나 하버드와 예일대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학부 졸업 후 그는 프린스턴대 입학처장에게 "귀 대학에 떨어졌지만 하버드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고 4년 만에 편지를 보냈다. 저서에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대학생활 내내 침대 겸용 소파에서 자며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고 회고했다.

# 기록에 따르면 1966년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주식-채권투자에서 10년 연속 최고 수익율을 올렸다. 1992년에는 2600만 달러의 개인소득을 올려 월가의 신화가 됐다. 26년간 금융전문가로 활동하며 골드만삭스 공동회장(90∼92년)에 올랐다.

# 재무장관으로서의 정책은 루비노믹스(Rubinomics)로 요약된다. 과감한 재정적자 축소정책. 강한 달러를 근간으로 금리를 낮춰 기업 경쟁력을 키웠고, 물가상승을 적절히 통제했다. 재정의 기초가 닦여진 미국 경제는 10년 가까이 호황을 누렸다.

# 루빈은 1985년 플라자 합의가 10년간 엔화강세를 유도하고 일본의 장기침체를 야기,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진단했다. 1995년 선진 7개국과 함께 엔저 유도에 동의, '역(逆) 플라자 합의'를 이끌었다. 이후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중앙은행들마저 공조개입(joint intervention)에 가담했다.


# 미국은 선제적인 환율정책을 마련했지만 역 플라자 이후 멕시코가 페소화 위기를, 아시아 전체는 금융위기를, 러시아는 모라토리움 직전의 대외채무동결을 경험했다. 미국과 같은 대륙에 있는 중남미 개도국은 내부의 정치 문제가 더해져 2000년대에도 환율불안을 겪고 있다.

# 1997년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찾아왔을 때 정부는 일본 등 우방국의 도움을 모색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문제는 IMF가 처리할 것"이라는 루빈의 선언이 결정타였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한국은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아들였다.

#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유로 99년 장관직을 물러난 루빈은 같은 해 씨티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지난해 한국씨티은행 3주년 기념 차 방한해서는 "한국이 무역 개방을 더욱 확대해야한다"고 권고하면서도 "서브프라임 사태가 경제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고 예고했다.

# 외환위기를 경험했던 강만수 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금융시장의 어려움이 파국 위험에까지 미치자 루빈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라며 한·미 통화스와프를 도와달라고 씨티그룹 고문에게 매달렸다. 루빈은 장관 시절 자신이 차관으로 발탁했던 현 티모시 가이스너 뉴욕연방은행 총재와 만나 스와프 대상에 한국을 포함시켰다.

# 4년 전 존 캐리 민주당 후보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연임을 저지하러 나섰을 때 그의 경제고문은 루빈이었다. 이제 새 시대를 원하는 미국인들이 오바마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오바마의 경제고문은 어스탄 굴스비(Austan Goolsbee)와 폴 볼커(Paul Volcker) 그리고 로버트 루빈이다.

베스트 클릭

  1. 1 "밥 먹자" 기내식 뜯었다가 "꺄악"…'살아있는' 생쥐 나와 비상 착륙
  2. 2 "연예인 아니세요?" 묻더니…노홍철이 장거리 비행서 겪은 황당한 일
  3. 3 박수홍 아내 "악플러, 잡고 보니 형수 절친…600만원 벌금형"
  4. 4 "노후 위해 부동산 여러 채? 저라면 '여기' 투자"…은퇴 전문가의 조언
  5. 5 점점 사라지는 가을?…"동남아 온 듯" 더운 9월, 내년에도 푹푹 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