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금융실명제와 한미 통화스와프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 2008.11.04 17:38
정부를 오래 출입하다 보면 '금융실명제'를 입안했다는 사람을 수십명쯤 만나게 된다. 그 당시 재무부 이재국에 있었던 사람들 중 금융실명제 도입에 한몫 거들지 않은 이가 없다. 분명히 금융실명제는 극비리에 극소수에 의해 추진됐는데도, 참여했다는 사람은 수십명이다. 각자의 주장을 모두 믿는다면 이런 아이러니도 가능하다.

정부에서 작품이 하나 나온 뒤에는 으레 수많은 '주역'들이 등장한다. 금융실명제처럼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일에는 특히 그렇다. 심지어 금융실명제 발표자료를 복사한 사람도 금융실명제 도입에 기여했다고 하는 식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처럼 논란이 많은 일에는 '주역'이 별로 없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부가 모처럼 한건했다.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얘기다. 이번 협정이 금융시장 안정에 큰 역할을 했다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다. '외환위기 우려'도 한방에 날려버렸다. 큰 작품이 나왔으니 마땅히 '논공행상'(論功行賞)이 있어야 한다. 공을 세운 이는 각자의 공을 떳떳하게 내세우고, 그에 걸맞는 보상을 받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번엔 좀 유별나다. 사람들 사이의 '공적 다툼'을 넘어 기관들 사이의 '감정 싸움'으로 번졌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그 주인공이다. 이번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을 재정부가 주도하고, 한은은 마무리만 했다는 식의 보도에 대해 한은이 발끈하고 나섰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을 띄워주기 위한 재정부의 '언론 플레이'라는 얘기다. 한은은 재정부 고위간부에 대한 문책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이번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은 재정부와 한은의 공동작품이다. 재정부는 로버트 루빈 씨티그룹 고문(전 재무장관)을 통해 티모시 가이스너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설득했고, 한은은 도날드 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부의장을 움직였다. 어느 한쪽의 힘 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그쪽에서 한 게 뭐가 있냐"고 할 일은 아니다.

사실 국민들은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이 누구의 작품이냐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재정부나 한은이나 감정싸움할 시간에 내년 4월말로 끝나는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의 연장 또는 금액 확대에 신경써달라는 게 국민들의 바람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항문 가려워 '벅벅'…비누로 깨끗이 씻었는데 '반전'
  2. 2 선우은숙 "미안합니다"…'유영재와 신혼' 공개한 방송서 오열, 왜
  3. 3 유영재 여파?…선우은숙, '동치미' 하차 결정 "부담 주고 싶지 않다"
  4. 4 "감히 빈살만에 저항? 쏴버려"…'네옴시티' 욕망 키운 사우디에 무슨 일이
  5. 5 "췌장암 0.5㎝ 커지면 수술하기로 했는데…" 울먹인 보호자 [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