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품을 치료하는 의사"

머니투데이 최종일 기자 | 2008.11.04 12:21

[프로의 세계]김겸 국립현대미술관 작품보존과학팀장

광화문 한복판을 지키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지난달 깔끔하게 새 단장을 했다. 동상은 지난 40년간 자동차 매연 등으로 켜켜이 쌓였던 세월의 먼지를 툴툴 날려버리고 청동 고유의 장엄한 빛깔을 뽐냈다.

건국 60주년을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야외조각작품 보존수복사업 일환으로 실시한 이 작업은 국내 유일의 조각품 보존수복 전문가인 김겸(39ㆍ사진) 작품보존과학팀 팀장이 진두지휘했다.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만난 그는 스스로를 "작품을 치료하는 의사"라고 소개했다.

덕수궁 세종대왕 동상의 보존수복 작업도 해 낸 김 팀장은 "우리 사회가 문화적으로 여유가 없는 근대를 겪다 보니 예술작품 보존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며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기존 작품의 모습을 건강하게 보존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팀장을 맡으면서 그는 업무 사항에 '훼손될 지경에 놓인 국내 작품 모두'를 관리 대상으로 규정했다. "우리 미술관의 소장 작품만 신경 쓰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현대미술관이 국내에 단 하나뿐인 국립미술관인 만큼, 우리의 귀중한 작품들을 잘 보존하는 것도 팀장으로서 제 임무라고 생각했죠."

그가 미술작품 보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1980년대 말 미술 전문 잡지를 통해서였다. 이후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대학원 재학 시절에 호암미술관 보존과학실에서 연구원으로 채용되면서 이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 동북예술공과대학과 영국 링컨대학에서 5년을 더 공부하며 전문성을 키웠다.


희귀 분야 전문가여서 에피소드도 많다. "근대 1세대 조각가인 권진규 씨가 형님 집에 작품을 남겼는데, 성북동이 재개발되면서 유족이 그 작품을 삼성에 기증했습니다. 이에 작품의 앞면을 싸고 뒤를 긁어내는 작업을 해야 했는데, 만사 제쳐두고 겨울 내내 5개월 동안 그 일만 해야 했죠."

현재 국내에 유물보존 관련 학과가 몇 개 대학원에 개설돼 있지만, 예술작품 보존 전문 인력을 길러내는 학교는 전무하다. 그렇다보니 그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추진하는 '문화예술 희소인력 양성사업' 세미나에 참석하는 등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끝으로 작품 보존에 대한 인식 전환을 당부했다. "과거에는 다친 부위에 된장을 바르기도 했지만, 이제는 병원에 가서 의사를 찾습니다.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훼손된 작품에 땜질 처방을 해놓으면 금세 탈이 납니다. 후대에 물려줘야 할 문화유산인데 말입니다. 작품이 아프다면 제대로 된 병원에 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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