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급락장서 고객 울려 "이대론 안된다"

박영암 시장총괄데스크  | 2008.10.29 11:38

[마켓와치]위험 파는 ELS·ELF...개인투자자 보호책 절실

국내증권사들의 시장적응력이 놀랍다. 코스피지수의 급락으로 ELS(주가연계증권)가 잇단 손실을 보자 새로운 논리와 상품으로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국내증권사들은 최근 보다 파격적인 조건의 ELS를 잇따라 발행하고 있다. 이들은 주가급락으로 기초자산의 추가하락 가능성은 줄어든 반면 상대적으로 조기상환확률은 높아졌다며 개인들에게 투자를 권하고 있다. 일부 증권사는 연33%의 고수익률 ELS를 내놨다. 하지만 원금손실 ELS의 급증을 우려하고 있던 터라 연33% 신상품 등장을 마냥 반길 수 없다.

지난24일자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원금 비보장 공모 ELS는 총 1264개로 이중 원금손실 구간(kock-in)에 들어간 것은 모두 849개였다(22일기준). 손실 구간의 ELS 발행잔액은 4조9484억원으로 이들의 평균수익률은 -46.7% 였다. 이중 연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ELS는 모두 24개(발행잔액 1634억원)로 원금회복 가능성이 적다는 게 증권업계 중론이다.

ELS를 펀드에 편입한 ELF(주가연계펀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설정액 50억원 이상 ELF는 총 512개(설정잔액 5조2284억원). 이중 손실률이 40% 이상인 펀드는 318개에 달한다.

◆ 고객을 원금손실 위험에 노출시키는 상품구조

대규모 손실을 기록중인 ELS와 ELF에 대해 걱정이 앞선다. 무엇보다 만기시 사라질 수천억원 규모의 원금이 부담스럽다. 또한 부적절한 구조의 ELS가 '자산관리'용으로 널리 선전되는 현실은 더욱 안타깝다.

사실 ELS는 공모상품으로는 많은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그동안 주가상승으로 문제점이 노출되지 않았을 뿐이다. 파생상품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에서 판매되는 대다수 원금 비보장 ELS는 개인들이 옵션을 매도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즉 개인들은 약정된 조건을 충족하면 통상 연20% 안팎의 수익률을 옵션매도 프리미엄 형태로 지급받는다. 대신 기초자산이 특정 구간을 벗어나면 원금전액손실 위험에 노출된다. 만기도래한 일부 ELS에서 90%대까지 손실이 발생하는 것도 이같은 구조 때문이다.

물론 증권사들은 레버리지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손실이 원금으로 제한된다고 해명한다. 오히려 투자손실은 제한된 반면 약정된 수익률을 달성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주장한다. 올해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원금손실 발생 가능성도 적다고 강조한다. 이같은 증권업계의 주장을 십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개인고객을 '100% 원금손실' 위험에 노출시키는 상품을 현행처럼 판매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ELS는 또한 만성적인 불완전 판매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ELS는 다양한 성격의 이색옵션을 복합적으로 사용한다. 이같은 구조 때문에 증권사 직원들도 고객에게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실제로 ELS 투자손실에 따른 금융분쟁시 개인고객들은 증권사가 충분한 위험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5월 삼성전자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가 90% 가량 손실을 내고 청산됐을 때 일부 고객들은 "증권사가 원금보장형으로 판매했다"고 항의했다.

또한 만기가 존재하는 '휘발성' 상품이라는 점도 약점이다. 대부분의 국내 ELS는 3년 만기로 발행된다. ELS 투자자들은 기초자산의 회복을 기다리고 싶어도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만기시점에서 손실을 확정짓게 된다. 최근 발행되는 ELS에는 만기 1년짜리도 눈에 띈다. 만기가 짧을수록 손실회복 기간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ELS를 펀드에 편입한 ELF는 더욱 심각하다. ELS 자체의 문제 이외에도 공모펀드로 판매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 펀드매니저 전문성과 무관한 ELF, 이름만 펀드

공모펀드는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되기 때문에 분산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정종목 편입비중을 10% 이내로 제한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다. 하지만 ELF는 분산투자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ELS의 기초자산이 기껏해야 한두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개별종목 위험을 줄이는데 한계를 보인다.

여기다 ELF는 공모펀드와 달리 운용사와 펀드매니저의 전문능력을 활용할 수 없다. 일반 공모펀드는 펀드매니저가 운용사의 투자철학에 따라 고객자산을 굴리지만 ELF는 이같은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다. 단지 편입 ELS 수익률에 결정된다. 펀드매니저가 수익률 제고에 기여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이같은 구조 때문에 대부분의 국내 운용사에서 ELF는 주식운용팀이 아니라 마케팅팀(또는 AI팀)에서 담당한다.

자칫 ELF는 운용사의 명성에 치명적인 누를 끼칠 수 있다. 최근 일부 ELF가 70%가 넘는 손실을 고객에게 안기고 청산됐다. 이같은 손실을 기록한 운용사가 주식펀드에 돈을 넣어달라고 얘기하면 설득력이 있을까.

2002년이후 국내증시에 도입된 이후 ELS(F)는 증권사와 운용사에 짭짤한 수익을 안겨줬다. 올해만 해도 이들은 주식펀드를 대신한 효자였다. 하지만 일시적인 수익을 안겨준다고 올해 급락장에서 노출된 문제점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 증권사와 운용사들은 고객재산 관리에 구조적 한계를 내포한 이들 상품을 현행방식대로 판매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금융감독당국도 말로만 투자자 보호를 외칠 것이 아니다. ELS의 판매관행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해 봐야 한다. 물론 전문가(기관투자자)간 ELS 매매에 대해 금융감독당국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색옵션에 대해 완전 무지한 개인들에게 판매할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보호장치가 사실상 전무한 개인고객을 위해 금융감독당국은 획기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수익감소라는 증권사와 운용사의 얘기만 듣지 말고 대규모 손실에 울고 있는 개인고객의 하소연도 한번쯤 진지하게 경청해 줄 것을 권한다.

그렇다고 금융상품의 다양성이나 개인의 위험선호도 차이를 완전히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ELS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고 내재위험을 충분히 감내할 개인고객에게 선별적으로 판매하는 것은 적극 찬성이다. 개인들에게도 다양한 상품선택 기회를 제공할 수 있고 국내 파상상품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도 적극 권장할 수 있다. 다만 현재같은 무차별적인 판매에 대해서는 금융감독당국도 제재를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방식으로 언제 돈을 벌겠냐고 불평하는 증권(운용)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객을 구조적 위험에 노출시키면서까지 성공한 금융회사는 한번도 없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면 이같은 불만은 금방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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