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와 생수병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 2008.10.28 18:38
#지난 27일 밤 9시. 국회 기획재정위 회의가 지리하게 이어졌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유달리 지쳐보였다.

강 장관을 향해선 반복되는 질문이 많았다. 은행채무에 대한 지급보증 동의안을 심사하는 자리였지만 질의 상당수는 정부 감세안 비판과 강 장관 사퇴요구였다. 경제팀에 신뢰가 떨어졌다는 지적은 지겨울 정도로 등장했다.

강 장관은 간혹 의원들과 입씨름을 벌였지만 회의가 오후를 넘어 밤까지 계속되자 사실상 전의를 상실한 듯 보였다. "상속세 감세가 급하냐"는 질문이 나왔다. 그의 대답에선 체념이 배어나왔다.

"오늘 중요한 안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자꾸 다른 걸 물으셔서…."

그가 대답을 마치자 질의는 전광우 위원장에게 넘어갔다. 강 장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파묻고 손에 든 생수병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강 장관은 요즘 심정이 어떨까. 사퇴론은 야권을 넘어 여당 내에서도 흘러나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 장관은 우군을 얻긴 커녕 고립무원의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타들어간다'는 표현으로 부족할 만큼 심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에게는 말이 앞선다는 비난이 많다. 말보다 행동, 그러니까 정책으로 보여 달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지난 10월을 돌이켜보면 "강 장관이 말이 앞섰다"는 지적에 국회도 일정 부분 책임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국감 기간 강 장관은 국회에 불려나와 종일 자리를 지켜야 했다. 다른 일정을 이유로 차관이 대신 참석할라치면 '신성한' 국회를 모독한다는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일'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지만 강 장관에게는 일할 시간이 아니라 '말'할 시간만 허용됐던 셈이다.

27~28일의 재정위 지급보증안 심사 때도 마찬가지다. 회의를 위해 필요한 인원만 채우면 되는 의원들은 자유로이 자리를 비워가며 '충전' 시간도 가졌지만 강 장관은 그럴 수 없었다.

의원석엔 노트북 컴퓨터가 있어 기사를 검색할 수도, 질의를 준비할 수도 있었지만 강 장관이 앉은 기관장석엔 생수병과 종이컵뿐이었다.

#"땅 땅 땅"

28일 국회 본청 430호. 은행채무 지급보증 동의안을 가결하는 서병수 기획재정위원장의 의사봉이 세 번 울렸다. 맞은편 강 장관의 표정엔 안도감이 스쳤다.

강 장관은 소감 발언에서 "공적으로 사적으로 마음이 많이 아픈 때"라고 털어놨다. 또 "장관 취임 후 하루도 쉬지 않고 온몸으로 파도에 부딪치면서 일해 왔다"며 "그 과정에서 말도 많았다"고 말했다.

강 장관으로선 동의안이 통과됐다고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재정위 회의장을 나서는 강 장관의 뒷모습에서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는 장수의 피로감이 배어나왔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밥 먹자" 기내식 뜯었다가 "꺄악"…'살아있는' 생쥐 나와 비상 착륙
  2. 2 "연예인 아니세요?" 묻더니…노홍철이 장거리 비행서 겪은 황당한 일
  3. 3 박수홍 아내 "악플러, 잡고 보니 형수 절친…600만원 벌금형"
  4. 4 "노후 위해 부동산 여러 채? 저라면 '여기' 투자"…은퇴 전문가의 조언
  5. 5 [단독]울산 연금 92만원 받는데 진도는 43만원…지역별 불균형 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