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위기가 IMF 때보다 더 힘든 이유

이상배 기자, 박재범 기자 | 2008.10.24 15:44

[2008 대공황 헤쳐가기]정부, 정책적 대응능력 절실

미국발 '신용경색 쓰나미'가 전 세계를 강타한 가운데 "뭔가 더 무서운 게 올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대한민국을 휘감고 있다. '제2차 대공항'도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겪은 우리가 느끼는 공포감은 더하다. "꼭 1997년 외환위기 때 같다", "외환위기까지는 안 간다", "외환위기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등 세 가지 얘기가 동시에 떠도는 요즘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벌어질 상황은 어떨까.

우선 최근 상황을 보면 1997년 외환위기 직전과 꼭 닮았다. 경상수지는 적자다. 반면 외채는 급증했다. 외환위기가 있기 전 우리나라의 대외채무는 1994년 898억달러에서 1996년 1574억달러로 2년새 약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듬해 대외빚이 1742억달러까지 증가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외채무 비율이 30%를 넘기더니 곧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 뒤 안정적이었던 대외채무는 2005년 1879억달러에서 2007년 3822억달러로 다시 2년새 2배로 불었다. 올해 6월말에는 4198억달러로 늘면서 GDP 대비 대외채무 비율이 40%를 넘어섰다. 10년전과 비슷한 흐름인 셈이다. '외환위기설'이 나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원화가치 추락, 외국인의 주식 매도, 외신들의 비판적 보도 등도 10년전과 비슷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외환위기로 가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무엇보다 외환보유액이 넉넉하다. 9월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가용 외환보유액은 2397억달러에 이른다. 가용 외환보유액이 73억달러(1997년 11월말)에 불과했던 외환위기 당시와는 다르다. 외환보유액 대비 유동외채 비율도 6월말 현재 86%로 외환위기 때(973%)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외채의 구성을 봐도 조선업체의 수출 선수금, 해외펀드 환헤지용 해외차입금 등 실제 상환부담이 없는 외채가 1518억달러다. 외환위기 때 금융부실의 원인이 됐던 대기업들의 재무구조도 크게 개선됐다. 매출액 상위 1000대 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1997년 347%에서 지난해 83%로 격감했다.

다만 어떤 면에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욱 힘든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외환위기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만의 문제였고 미국과 서유럽 등 선진국 경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지금은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서유럽을 거쳐 신흥국가로 전이되면서 파장이 점점 더 커지는 상황이다.


자산을 현금화하려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주식을 투매해 주가를 폭락시키고 주식 판 대금을 달러로 바꾸려는 외국인의 수요가 원/달러 환율을 급등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주가 급락은 주가연계증권(ELS) 등 주식 옵션 상품에 타격을 주면서 주가를 끌어내리는 또 다른 악순환의 고리도 만들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이 마무리된다 해도 전세계 실물경제의 심각한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는 점이다. 1929년 대공황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특히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가 많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지난 8월말 현재 금융권 전체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307조5000억원에 달했다. 내수부양을 위해 신용카드 발급과 카드 소비를 장려하는 등의 정책은 더 이상 쓰기 어렵다. 이 역시 가계엔 별 문제가 없었던 외환위기 때보다 더 걱정스러운 이유다. 다만 외환위기 때와 달리 아직까지는 기업 부문이 건실하다는 점이 위안이다.

이런 위기국면에서 최대 변수는 정부와 국회의 정책적 대응 능력이다. 그 핵심은 위기 관리와 신뢰 회복으로 요약된다. 한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는 "지금 외국인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은 정부가 지금의 이례적인 위기상황을 잘 관리할 능력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라며 "최근 외국인이 한국시장에서 빠르게 이탈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대응이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시장은 정부가 어떤 점에서는 현 상황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선제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펼쳐 주기를 바라고 있다. 금융시장이 패닉(공황) 속에서 마비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정책적 대응 능력과 시장의 신뢰 회복은 더욱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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