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다우지수가 4.7% 급등하고, 일본 닛케이지수가 3.4% 반등하는 등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코스피시장은 상대적으로 움츠린 채 강보합 수준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도 국내증시는 프로그램 매매에 좌우되고 있다. 특히 자산운용사(투신권)의 차익거래가 전날과 마찬가지로 부각되는 모습이다.
투신은 이날 오전 11시 30분 현재 지수선물을 6228계약을 순매수하고, 코스피시장에서는 2300억원을 순매도하고 있다.
전날에는 투신은 지수선물을 3108계약 순매도하고, 코스피시장에서 2006억원을 순매수했다. 매매 수준이 비슷한 점을 고려하면 지수선물과 현물시장에서 차익거래를 노리는 인덱스펀드만 매매에 나서고, 액티브펀드는 '쉬었다'는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투신은 액티브펀드의 경우 지수선물을 이용한 차익거래를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지수선물과 연계되지 않은 액티브펀드는 매도에 방점을 찍거나 실제로는 소극적인 매매를 하고 있다는 판단이 드는 셈이다.
투신이 제대로 매매에 뛰어든 날은 10월 들어 13일 정도만 눈에 띈다. 이날 투신은 코스피시장에서 2243억원을 순매수하고, 지수선물 시장에서는 392계약을 순매도했다. 인덱스펀드의 차익거래 이외에 액티브펀드가 실질적으로 매수에 뛰어들었다.
13일 코스피지수는 전거래일에 비해 3.8% 급등했다. 이날은 미국 다우지수가 8000선이 무너졌지만 장후반 급등세로 돌아선 것이 향후 반등의 신호로 여겨진데다, 전 주말 급락에 따른 반발매수세가 유입되면서 코스피시장에서 6번째 사이드카가 걸린 날이기도 했다.
이날을 제외하고 투신은 현ㆍ선물을 동반 순매도(8일ㆍ9일ㆍ16일)하거나 20일과 21일처럼 차익거래에만 몰두하는 등 액티브펀드의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는 상태다.
국내 수급의 축을 담당하는 투신이 최근 인덱스펀드의 차익거래를 제외하고 매수에 몸을 사리는 이유로는 '환매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국내 경기의 침체 가능성과 자금 유입이 둔화되는 등 요인으로 '선뜻 매수에 나섰다가 깨지면 어떻게 하나'는 자신감 부족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익명을 요구한 자산운용업계의 주식운용본부장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매수에 집중하는 것은 외국인들의 총알받이만 되고 '실탄'만 소비하는 일"이라면서 "미국이 본격 경기부양에 나섰다는 소리는 국내 상황과는 별개라고 대다수 주요 운용사들은 판단하는 듯 하다"고 귀띔했다.
이어 이 본부장은 "국내에서는 건설사들의 PEF가 주요 뇌관으로 작용해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면서 "이와 함께 국내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원활하지 않은 모습도 보이는 등 실물이 엉망이 될 것이라는 공포도 몸을 사리는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자산운용사의 한 임원은 "전혀 매매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매매는 하는데 아주 소극적인 것은 맞다"며 "무엇보다 주가반등시 쏟아져 나올 환매에 대한 대비로 현금확보가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임원은 또 "들어오는 돈은 없고 경기도 불안한 와중에 무작정 증시에 매수로 방향을 틀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가 증시부양책과 건설사 지원 방안을 내놓기는 하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견해도 첨부했다.
한 자산운용사의 대표는 "듣기로는 PEF부실이 90조원이 넘는다는 소리도 있어 정부가 내놓는 몇조원의 지원은 어림도 없다는 공포가 증시주변에 만연하다"며 "더블 A-급 신용을 가진 기업의 회사채 금리가 15%가 넘는 등 실질금리가 낮아지지 않는 한 투신의 불안은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쉽게 말해 증시는 근본적으로 기업이익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마당에 미국의 경기부양책은 일단 '먼나라 소리'라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증시가 출렁이기라도 하면 국내 불안과 겹쳐 투신은 더더욱 투자에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투신은 연초에 비해 주식편입비를 크게 낮추며 현금화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국내 펀드업계를 좌우하는 주요 운용사들의 국내주식형펀드에서 평균 주식편입비중은 지난 20일 기준으로 90.36%이다. 특히 비교대상 41개 사 가운데 지난 20일 기준으로 주식편입비를 90% 미만으로 낮춘 운용사는 14개로 34.1%를 차지한다. 운용사 3분의 1이 현금비중을 10% 이상으로 높였다는 이야기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연초 92.2%였던 주식편입비중을 90.9%로 1.3%p 낮췄다. 1.3%p가 대수롭게 느껴지기도 하겠다. 그러나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미래에셋운용의 국내주식형펀드 규모가 31조9337억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4150억원 가량을 현금으로 쟁여두고 있는 셈이다.
삼성투신의 경우 연초 92.1%였던 주식편입비중이 88.7%로 낮아진 상태다. 이밖에 하나UBS와 동부운용도 연초에는 주식편입비중이 90%를 웃돌았지만 현재는 각각 87.5%와 84.3%로 줄어든 상황이다.
펀드별로 보면 더욱 투신권이 입지가 좁아진다. 설정액 3조원을 유지하는 '미래에셋디스커버리 주식형 3'는 연초 펀드에서 주식차지 비중이 92.1%였으나 지난 20일에는 88.4%로 줄어들었다. 이밖에 설정액 1조1500억원인 삼성당신을위한 리서치주식종류형도 주식편입비중이 88.5%에 그치고 있다.
인덱스펀드를 제외한 주식형펀드가 움츠리면 움츠릴수록 증시에는 수급이 원활하지 못해 지지부진해질 공산이 크다. 글로벌 상황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신용위기가 뒤따르면서 투신사들이 곤란한 지경에 처한 점을 십분 감안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언제나 투자자들에게 주입한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되새길 필요성도 제기된다.
'남의 돈'을 받았으면 수세에서 위기타령만 하지 말고, 적극적인 행보로 난관을 타개하는 방안도 찾는 게 투신사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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