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을 내고, 틈을 만들자

머니투데이 김영권 부국장 겸 문화기획부장 | 2008.10.21 12:31

[웰빙에세이]내 마음속의 빈터 만들기

오랜만에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가을 하늘이 맑고 깊고 푸르다. 세상이 드넓은 하늘 아래 있다는 걸 또 잊고 살았다.

모든 것을 담아 내는 텅 빈 공간,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空, 만물의 배경, 그 아득한 하늘을 보니 가슴이 시리다.

아마 무한대의 하늘과 공명하는 주파수가 내 안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심의 좁은 하늘에 갇혀 두서없이 지내다 보니 교신이 잘 안된다.
 
가을 풀벌레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가 처연하다. 창공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다. 겨울의 침묵으로 이어지는 페이드 아웃(fade out)이다. 눈을 감고 귀를 연다. 새소리, 바람 소리, 낙엽 흩날리는 소리, 자동차 소리, 여기저기 수근거리는 소리….

수십 수백개의 소리가 나를 감싸고 있다. 그 소리들이 어우러진 웅성거림, 나도 세상의 거대한 웅성거림에 동참하고 있다는 걸 또 잊고 살았다.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지구 반대편의 다른 어느 자리까지 어디서든 셀 수 없이 많은 소리가 끝도 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그 소리를 담아 내는 침묵, 모든 소리의 배경, 그 무한한 고요를 느끼니 역시 가슴이 시리다. 텅 빈 침묵과 공명하는 주파수를 느낀다.

삶의 드라마가 아무리 흥미진진하고 파란만장해도 결국 영원한 시공간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너무 안달하며 살지 말아야겠다. 울긋불긋하고 알록달록한 것들에 너무 마음 주지 말아야겠다.

내 안에 더 채우고 더 드러내려는 욕망만 있는 게 아니라 텅 빈 하늘과 침묵에 공명하는 또 다른 주파수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 주파수와 교신할 수 있도록 내 마음 속에도 텅 빈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어떻게 그런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꾸역꾸역 채운 삶들을 덜어내면 된다.

우선, 꽉찬 스케쥴부터 비운다. 1주일에 하루이틀은 약속을 잡지 않는다. 그날은 '약속없는 날'이다. 아니 나와 약속한 날이다. 나와 한 약속도 다른 사람과 한 약속만큼 중요하다. 어쩌다 생긴 빈 시간은 다른 일로 채우지 않는다. 항상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털어낸다. 빈 시간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둘째, 속을 비운다. 덜 먹고, 덜 마신다. 나쁜 것들이 몸에 쌓이지 않도록 열심히 움직인다.

셋째,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가슴이 답답하면 크게 웃는다. 아니면 운다. 그것도 부족하면 소리를 지른다. 깊게 호흡한다.


넷째, 머릿속을 가볍게 한다. 잡다한 정보를 탐하지 않는다. 잡념을 줄인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긍정하고 받아들인다. 남의 일에 시시콜콜 간섭하지 않는다. 위 보다는 옆과 아래를 보고 산다. 비교하고, 다투고, 이기려고만 하지 않는다.

다섯째, 덜 사고 덜 쓴다. 집이며 사무실이며 온통 잡다하게 쌓여있는 것들을 치운다. 과감하게 버린다. 버릴 것이 별로 없을 때까지 버린다. 버릴 것이 많으면 새 것을 사지 않는다.

여섯째, 틈틈이 여행한다. 여행길에서 일상의 굴레가 얼마나 번거롭고 무거운지 되새겨 본다.

일곱째, 욕심을 줄여 마음도 널널하게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아마 내 안에도 빈 틈이 생길 것이다. 그 틈이 넓어지면 그 사이로 하늘이 열리고, 풀벌레 소리가 들릴 것이다. 너무 비좁아 옴짝달싹 못하게 된 일상에 한자락 시원한 바람이 불 것이다. 그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꽃향기가 날릴 것이다. 내 안에 평화로운 기운이 감돌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얼마나 버겁게 살고 있는가?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학교에서든 얼마나 무거운 짐들을 서로에게 지우고 살고 있는가. 그러니 짬을 내고, 틈을 만들자. 마음 속에 빈터를 내자.

  
☞웰빙노트

걷기와 침묵은 나를 구원해 주었다. 걷기와 침묵은 속도를 늦추어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고 나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기회를 준다. 내가 발견한 바에 의하면 침묵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침묵은 단순히 내가 입을 다물 때 생기는 말의 부재가 아니다. 침묵은 총체적이면서 독립적인 현상으로, 외적인 요소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 나는 침묵 속에서 나 자신을 재발견한다. <존 프란시스,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누구나 알다시피 현대인의 마음은 계속해서 더 많은 것, 더 많은 돈, 더 높은 신분, 더 많은 사랑, 더 나은 직업, 만족, 새로운 차, 더 젊어보이는 육체, 더 젊어보이는 배우자, 더 큰 집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성공을 하면, 즉 돈을 많이 벌거나 새 차를 사거나 더 나은 직업을 가지게 되면 잠시 동안은 만족해 한다. 그러나 조만간(대부분은 곧 바로)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 마음이 이런 식으로 진화한 까닭에 우리는 자신을 비교하고 평가하고 비판하며, 갖지 못한 것에 신경 쓰면서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거의 일어나지도 않을 끔찍한 시나리오를 상상하느라 심리적으로 고통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행복해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루스 해리스, 행복의 함정>

"침묵은 신이 말하는 언어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은 나쁜 번역이다"라고 옛날부터 말해 왔다. 침묵은 사실 공간의 다른 말이다. 삶 속에서 침묵과 마주칠 때마다 그 침묵을 자각하는 것은 우리를 우리 안의 형상도 없고 시간도 없는 차원과 연결시켜 줄 것이다. 생각 너머, 에고 너머에 있는 차원과. 그것은 자연의 세계에 널리 스며들어 있는 침묵일 수도 있고, 이른 아침 방 안에 깃든 침묵일 수도 있고, 소리와 소리 사이에 놓인 조용한 틈일 수도 있다.<에크하르트 톨레,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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