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 해결을 위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이 상대적으로 적은 경제 대국들이 나서야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워낙 금융기관 손실이 크고,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라 자체적인 부양이 한계가 분명한 만큼 손실이 상대적으로 적은 나라들이 도움을 줘야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21일 일본의 상당수 리더들이 전세계 금융질서가 혼란에 빠진 지금 자국이 경제적 리더십을 회복하는데 있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출로 막대한 부를 쌓은 일본의 경우 위기에 빠진 나라들을 도울 수 있는 자금 규모는 2조달러에 달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미국 정부는 이미 망가진 은행을 살리는데 1조달러가 넘는 돈을 써버렸다. 이에 비하면 일본은 서브프라임 손실도 적고, 엔화는 달러에 대해 강세를 보이는 등 어느 때보다 운신의 폭이 넓다.
이토 다카토시 토쿄대 교수(경제정책 전공)는 "미국이라는 금융거인의 지배력은 크게 약해졌다"며 "일본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이 백기사, 자금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자초한 일본이 어떻게 남의 나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설 수 있느냐며 회의적인 입장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끔찍한 위기를 해결한 경험이 오히려 이번 위기 국면에서 부각되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위기에 빠진 나라들을 지원하는 것은 수출 중심의 일본 경제를 침체에서 구조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일본이 적극 나서야한다는 주장은 이번 금융위기를 맞아 기존의 경제 질서가 해체되고 있다는 대목에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위상이 실추되고 있으며 이를 누군가 대신해야한다는 것이다. 시오자키 야스히사 전 일본 관방장관은 "미국의 경제 및 금융 파워가 상대적으로 쇠퇴했다. 미국의 리더십이 약화되는 것도 불가피하다"며 "새로운 다국적 경제 체제가 부상하는 것을 지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야스히사 전 장관은 미국을 다른 특정 나라가 대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국이 기존의 역할을 유럽과 일본 뿐 아니라 중국 인도 등과 분담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이번 위기를 해결하는데 일본의 풍부한 돈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일본 밖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워싱턴에서 개최됐던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 참석한 재무장관들은 일본의 돈이 위기에 빠진 나라들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당장 이웃해있는 한국이 외국인 자금 이탈에 따른 원화 가치 폭락과 주가폭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적인 지원을 넘어서야한다는 견해도 있다. 중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금융 뿐 아니라 기간산업 확충에 적극 투자하는 방식을 따라야한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칼럼에서 대공황 당시의 뉴딜 정책과 비슷한 방식이 되어야한다고 제안했다.
자민당 소속의 야나기사와 하쿠오 의원(전 재정장관)은 "전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야한다"며 "단순히 금융적인 대응은 이번 위기를 해결하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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