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흉한 디플레 불안감, 현실화될까

머니투데이 유일한 기자 | 2008.10.20 13:29

"물가, 통제권으로 복귀중" 우세… 로이터, 美디플레 경고

경제전반에 걸친 물가 하락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 공포가 폭락한 주가와 유가를 근거로 확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1930년대 미국이나 1990년대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을 낳은 디플레를 예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이같은 디플레를 예상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대공황 이후 유례없는 금융위기를 맞아 심리적인 디플레 공포가 증폭된 영향이 크며, 지금 물가는 디플레가 아닌 각국의 통제권 안으로 회귀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미 연준(FRB)은 1.5~2.0%의 물가상승을 안정적인 수준으로 보고 있다. 변동성이 높은 에너지와 음식료를 제외한 핵심 물가는 현재 2%를 조금 넘는다.

유가급등 충격으로 지난 여름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5.6%에 달했다. 유가가 고점 대비 반토막 나고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면서 소비자 물가는 올해와 내년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물가는 안정세를 넘어 하락세로 치닫을 것인가.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와관련 디플레 위험은 낮다(slim)며 다만 금융시장 충격과 경기하강이 디플레 환경에 적합한 무대를 설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준 이사들의 시각도 광범위한 디플레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을 완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이처럼 가능성은 낮지만 100% 불가능하지 않다는 틈을 비집고 디플레 공포가 싹트고 있는 것이다. 자넷 옐런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는 지난주 한 연설에서 "유가 하락과 노동과 상품 수요 감소로 인플레 하락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내가 안정적인 물가라고 생각하는 수준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디플레를 막기 위한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공조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중국과 인도의 성장 모멘텀도 아직은 유효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미국과 유럽 정부는 유례없는 금융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은 상황이다. 수조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했고, 시시각각 실행되고 있다. 대공황과 '잃어버린 10년'의 장기 디플레의 이유가 초기 정책 실패였다는 교훈을 명심하고 있는 것이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2002년 연준 관료로 재직할 당시 디플레 위험이 높아지자 '미국의 디플레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고 겸손한 어조로 말했다. 버냉키는 '디플레가 일어나도 완만하고 짧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이 충분하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폴 애시워스 미국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실업이 빠르게 늘고 자본시장은 극도의 혼란을 보이는 등 모든 여건이 디플레로 향하고 있다.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은 발빠른 정책적 대응으로 이런 흐름을 되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준의 대표적인 디플레 방어책으로 금리인하를 꼽고 있으며, 이에따라 1.5%로 낮아진 기준 금리는 1% 안팎으로 더 낮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금융위기에 타격을 입었지만 이머징 마켓의 소비가 침체로 가지 않으면 물가가 위험 수위로 하락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20일 지난 3분기 경제 성장률이 9%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5년 동안 가장 낮은 성장률이지만 지난 9개월 동안의 성장률은 9.9%로 사실상 두 자릿수였다.


한자리로 후퇴한 것 자체가 충격이고, 중국의 올해 성장률이 8%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지만 9%대 성장 전망이 더 많다. 물론 10% 넘던 호황을 생각하면 답답하지만 9%만 나와 줘도 안도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경착륙이 아니라 연착륙인 셈이다.

주요 중앙은행뿐 아니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같은 경제기구들의 디플레 방어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나친 유가하락에 연내 감산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올여름 유가 급등에 생산량을 늘린 것과 대조된다.

차킵 켈릴 OPEC의장은 19일 알제리아TV와의 인터뷰에서 "OPEC 회원국들이 석유 생산량을 하루 100만 배럴에서 200만 배럴 가량 줄일 것"이라며 "감산에 대해선 모두들 동의하지만 생산량을 얼마나 줄일지는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물론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전망이 유가하락을 주도한 측면이 크지만 대규모 감산이 이뤄질 경우 원유시장에는 상당한 파급이 예상된다. 유가가 안정되면 다른 원자재 가격도 영향받을 수 있다. 러시아와 브라질 등 금융위기에 쪼그라든 성장 엔진도 재가동될 수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OPEC이 200만 배럴을 감산할 경우 OPEC의 하루 생산량은 현재 3220만 배럴에서 6% 정도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로이터통신은 20일 디플레 공포가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며 미국 인플레가 내년에는 제로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준도 이를 의식해 디플레 방어에 총력을 기울여야한다고 덧붙였다. 로이터는 10년 만기 미재무부 채권과 인플레이션 지표 인덱스(물가연동 채권) 사이의 스프레드가 지난 3개월동안 270bp에서 90bp로 가파르게 위축됐다며 채권시장에서는 이미 인플레보다 디플레를 우려하고 있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바클레이 캐피털 뉴욕법인 이코노미스트(미국 담당)인 딘 마키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내년 7월까지 0%나 그 이하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세인트루이스 연준 총재에서 물러나 현재 카토 연구소에 몸담고 있는 윌리엄 풀씨는 "일본과 같은 디플레 가능성은 낮다. 다만 높은 인플레는 향후 1, 2년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길게 보면 인플레를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디플레 대처에 치중하면서 불어난 유동성이 자칫 악성 인플레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밥 먹자" 기내식 뜯었다가 "꺄악"…'살아있는' 생쥐 나와 비상 착륙
  2. 2 "연예인 아니세요?" 묻더니…노홍철이 장거리 비행서 겪은 황당한 일
  3. 3 박수홍 아내 "악플러, 잡고 보니 형수 절친…600만원 벌금형"
  4. 4 "노후 위해 부동산 여러 채? 저라면 '여기' 투자"…은퇴 전문가의 조언
  5. 5 [단독]울산 연금 92만원 받는데 진도는 43만원…지역별 불균형 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