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처방에 자주 등장하는 '사회주의'

머니투데이 유일한 기자 | 2008.10.14 11:30
미국 정부가 7000억달러 규모 구제금융의 첫 단계로 금융기관에 직접 자금을
투입키로 했다. 재무부는 금융기관 우선주 매입을 위한 자금으로 2500억달러를
설정하고, 이 가운데 절반 가량을 9대 은행에 투입키로 했다.

우선주 매입 대상 금융기관은 씨티그룹, 웰스파고, JP모간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골드만삭스, 모간스탠리, 스테이트스트리트코프, 뱅크오브뉴욕멜론, 메릴린치 등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은행들 모두에게 모두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셈이다.

유럽과 달리 민간 부문의 자유를 극도로 존중하는 자본주의 기풍을 내세우는 미국은 이처럼 정부가 민간 기업, 금융기관을 직접 소유(투자)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듯한 입장을 견지했다. 그런 미국이 유럽의 뒤를 따라 대대적인 은행 투자에 나섰다. 사실상 국유화 방안이다.

지난주까지만해도 미국의 금융위기를 다룬 외신에서 국유화(nationalization)라는 용어는 보기 드물었다. 그러나 이번주들어 빈번해졌다. 심지어 사회주의라는 말까지 등장하고있다.

뉴욕타임스는 14일 정부의 은행 지분 소유 프로그램이 통상 국유화라고 불리지만 미국에서는 이말이 사회주의를 떠올리기 때문에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국유화는 사실상 이전에도 자주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1차대전중인 1917년 미정부는 철도회사를 국유화했다. 온갖 상품과 군대 이동을 용이하게 하려는 조치였다. 전쟁이 끝나고 철도회사 채권자와 주주들은 보상을 받았고 회사는 1920년에 민영화됐다. 2차 대전때는 수십개의 철도회사와 광산이 국유화됐고 몽고메리워드 백화점이 잠시 정부의 수중에 들었다.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 트루먼 대통령은 88개 철강회사를 국유화했지만 대법원이 위헌적인 권력 남용이라고 판결해 오래가지 못했다.


은행 소유도 있었다. 1984년 정부는 컨티넨털 일리노이즈은행의 지분 80%를 장악했다. 당시 7위 은행이었고, 대마불사의 명분이 적용됐다. 정부는 여기서 10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후 이 은행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게 넘어갔다.

대공황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1930년 설립된 금융재건공사(RFC) 프로젝트는 이번에 제정된 7000억달러 구제법안과 매우 닮았다. 당시 RFC는 6000개 은행의 지분을 사들였고, 결국 13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뉴욕대의 리처드 실러 교수는 이 금액은 지금으로치면 2000억달러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대공황이 진정되면서 RFC 지분은 민간으로 넘어갔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낸시 코엔 교수는 "반복된 국유화 조치는 자본주의가 가능한한 생산적으로 굴러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위기의 국면에선 사치품과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은행 지분 소유라는 강경 노선에 마침내 글로벌 증시는 동반 폭등하고 있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버지니아대의 다덴 경영대학원의 로버트 브루너 교수는 "정부가 특정 산업을 소유하는 것은 '이러한 국유화가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하는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며 "미국은 지금 자동차와 항공 산업도 궁지에 몰려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구제금융에 대해 극좌파인 세스 델링거(사회주의 노동자당 의회 후보)씨는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순수 자유시장주의자들에게 공산주의 냄새가 나겠지만 이는 자본주의의 또다른 사기에 다름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자본주의는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재구성한다. 극소수 거부 가문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시스템으로 한층 다가서고 있다"고 말했다. 델링거는 "자본주의의 위기는 사회주의의 기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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