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한 의미가 실려 있는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미국까지 날아간 기자는 긴장감을 가지고 금융위기의 핵심부에 섰지만 가장 먼저 뇌리에 떠오른 이미지는 '연못속의 백조'였다.
그 흔한 플래카드도 시내에 붙어있지 않았다. IMF 빌딩에 와서야 혹시 있을줄 모를 테러에 대비해 경비를 서는 경찰의 모습이 보이는 등 그제서야 총회가 열리고 있음이 체감됐다.
프레스카드를 발급받아 행사장에 들어가봐도 예상만큼의 긴장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각국의 참가자들이 삼삼오오로 모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눈에 쉽게 들어왔지만 기대했던만큼의 '뜨거운' 열기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드문드문 해외 취재진의 모습도 보였지만 취재경쟁도 생각만큼 과열되지 않았다. IMF 총회장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여느 한적한 워싱턴 거리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한꺼풀만 벗기면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IMF의 185개국 대표들은 때로는 호소로, 때로는 윽박을 지르면서 저마다 자국의 이해를 최대화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발짓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우아하고 점잖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총성없는 전쟁' 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표로 참석해 세계경제 재편이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한국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느라 분초를 쪼개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 결과 "국가재정 투입과 통화스왑 등 동원가능한 모든 조치에 공조를 강화한다"는 작품이 나왔다. 선진국 주도의 글로벌 공조 국면에서 제외된 나머지 국가들은 G-20 회의를 요구해 "우리까지 포함시켜달라"고 외쳤지만 메아리는 공허할 수 밖에 없었다.
선진국들도 각자 사정에 따라 대응 수준은 달라졌다. '뱅크런'에 시달리는 영국 등 유럽 주요국은 각국 정부가 예금 전체에 지급보증을 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미국은 중립적이다. 아직까지 여유가 있는 아시아 국가들도 미온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이번 총회에 참가하려는 지구촌 식구를 미소를 띄우면서 환영하는 IMF 직원의 얼굴에서 10년 전 우리나라를 그토록 괴롭혔던 고약한 '점령군'의 이미지가 저절로 오버랩됐다. 역시 "세상은 힘 있는 자의 것"이라는 받아들이기 싫은 명제도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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