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가능성을 찾은 거죠"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 2008.10.17 04:50

[머니위크]은퇴, 그 후의 삶/이문규 높낮이 사장

“이제 쉬어야 할 나이에 왜 사서 고생을 하려하세요?”

“이 나이에 먹고사는 데 부족함 없을 만큼 벌어놨는데 뭐가 아쉬워서 엉뚱한 일에 승부를 거세요?”

지난 2003년, 이문규 사장(70)이 높낮이 싱크대로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변 반응은 예상하던 그대로였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격렬한 반대가 이어졌다. 평생 금융업계에서만 일해 온 그가 어느날 갑자기, 그것도 이미 은퇴를 맞이하고 편히 쉬어야 할 나이에 갑자기 싱크대ㆍ세면대를 만들겠다고 하니 이 사장을 지켜보는 지인들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 사장은 확신이 있었다. 실제로 싱크대ㆍ세면대의 높낮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키에 맞춰 조절할 수만 있게 된다면 틈새시장을 뚫고 새로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이 사장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을 밀어부쳤다. 높낮이를 사명으로 정하고 자본금 5억5000만원에 단 3~4명의 직원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그의 선택은 옳았다. 주방에서 장시간 싱크대를 사용하는 주부들에게 각자의 키에 맞게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싱크대는 허리 통증 등을 줄여주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사장은 “쉽지 않은 선택이고 용기였지만 덕분에 지금 이렇게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 아니겠냐”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때의 무모한(?) 도전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너털웃음 짓는다.

◆실버 창업으로 새 삶을 살다.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공무원 출신인 이 사장은 한국금융리스, 한국신용정보 등을 거쳐 지난 1999년 한아름종합금융의 사장을 끝으로 은퇴를 맞이했다. 평생을 금융쪽에서 종사해 온 그가 ‘싱크대ㆍ세면대’ 사업에 뛰어들게 된 건 사실 우연한 계기였다.

“한아름종금에서 사장으로 지내던 시절이었습니다. 부하 직원 한명이 ‘높낮이 조절 싱크대ㆍ세면대’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했어요. 이 친구가 장교로 군 생활을 하던 시절 함께 근무했던 대원의 아이디어라고 하더군요. 이미 처음 아이디어를 냈다는 사람이 특허까지 신청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사업화 과정을 도와달라고 저를 찾아온 것이었죠.”

‘확실히 틈새시장은 있겠구나.’ 아이디어를 접하고 이 사장이 가장 먼저 한 생각이었다. 장애인이나 어린아이 등 세면대의 높이 때문에 고생하던 이들을 생각하면 썩 괜찮은 사업 아이템인 것 같았다. 한아름종금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쌍용화재 등에서 사외이사로 사회활동을 해오던 이 사장은 2003년 본격적인 창업에 뛰어들기 전까지 주말만 되면 싱크대ㆍ세면대 사업에 매달렸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60세가 넘어 창업을 하려니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해야 했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도 많은 노력을 들였지만 실패로 끝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보니 사업자금도 5억5000만원으로는 턱도 없이 모자랐다. 직접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사업 아이템을 설명하고 투자금을 모았다.

“창업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 아이디어 하나만을 믿고 무작정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 역시도 그랬고요. 사업이라는 게 기술, 자본, 마케팅 등 모든 부분이 다 어우러져야 제대로 굴러가기 마련이니까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새로 다 배워가며 일을 처리해야했습니다. 물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죠. 하지만 이왕 시작한 일이니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 생기더라고요.”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제품 개발에 성공하고 난 뒤에도 이 제품을 상업화하기까지는 더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홍보가 가장 시급했다. 이 사장은 대기업 건설사를 직접 찾아다니며 팸플릿을 펼치고 제품 설명을 시작했다. 한참이나 나이 어린 과장이나 사장을 상대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대기업의 임원을 역임했던 과거만 자꾸 떠올리다보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죠. 젊은 사람들이야 늙은이가 커피라도 한잔 마시러 왔다고 하면 누가 반겨주겠어요. 그래도 별 수 있나요. 그쪽에서 반기든 안 반기든 나는 내 할일을 하는 거죠.”

◆꿈을 먹고 살기에 나는 행복하다


그의 이런 열정 덕분일까. 높낮이는 5년 만에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튼튼하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국내 특허뿐 아니라 미국, 중국 특허도 취득했을 만큼 기술력 또한 인정받았다. 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2004년 현대건설 모델하우스 계약을 시작으로 줄줄이 계약이 성사됐다. 지난해에는 9억400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며 흑자로 돌아선 뒤 올해는 22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액만 해도 1년새 2배 가까이 성장한 셈이다. 여세를 몰아 2010년에는 매출 300억원 이상에 코스닥 상장을 하겠다는 목표도 세우고 있다.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일을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행운이죠. 실제로 내가 이 나이 먹어서까지 건강한 것도 다 밖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업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가 삶의 활력이죠. 하루하루 쉴 틈 없이 바쁘게 살다보니 지칠 틈이 없습니다.”

아직도 일주일에 두서너번은 친한 친구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이 사장은 “실제로 주변에서도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여유를 떠나 아침에 눈을 떠서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 할 일이 있다는 것, 바쁘다는 것 자체를 부러워한다는 설명이다.

“사람이라는 게 식생활만으로는 살 수 없지 않습니까. 나는 우두커니 집에서 앉아있는 것 보다는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습니다. 높낮이 싱크대라면 내 인생을 걸어도 될 만하겠다는 판단이 들었구요.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때가 가장 활기차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건 늙어서나 젊어서나 마찬가지인거죠.”

이 사장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거듭 강조한다.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처해진 상황에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꿈’을 이루기 위해 삶의 원동력을 얻는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때로는 꿈을 이뤄 성취감을 만끽할 때도 있고, 때로는 꿈 때문에 좌절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새로운 꿈을 꾸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이 사장은 “20대는 20대에 걸맞은 꿈을 꾸며 살았고, 70대인 지금은 또 그에 걸맞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 그의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꿈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이 사장이 글귀 하나를 들려준다.

“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다보면 채움의 삶을 살게 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다보면 비움의 삶을 살게 된다.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비움의 삶이 성직자의 본분이다.’ 성운 스님의 책에서 읽은 글귀입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이 글귀처럼 사는 게 지금 나의 꿈이라면 꿈이지요.”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자 이 사장이 “아직은 멀기만 한 꿈이라 쑥스럽다”며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나는 사학을 전공한 문리대 출신입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해보니 지금 중소기업의 CEO들은 대부분 이공계 출신입니다. 기술력이 강조되는 회사를 운영하다보니 이공계 출신들이 유리한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문리대 출신의 입장에서 이런 현재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철학, 역사 같은 인문학이야말로 우리 삶의 기본 토대가 되어주는 중요한 학문인데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점차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너무나 큰 꿈이고, 그래서 언제 어떻게 그 꿈을 이루어가야 할지 막연하기만 하다. 하지만 단 한번도 인문학을 살리는 일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꿈을 잊은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한 평생 꿈을 꾸며, 그 꿈을 좇으며 누구보다 활기찬 인생을 보내고 있는 이문규 사장. 그가 일평생 행복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나이를 뛰어넘는 꿈에 대한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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