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폭락에 휘청, 자금줄 마저 꽁꽁

머니투데이 전필수 기자 | 2008.10.15 04:05

[머니위크]엎친데 덮친 코스닥

미국이 기침을 하면 우리 증시는 폐렴에 걸린다고 한다. 수출위주의 경제구조와 높은 외국인 주식투자비중 등 글로벌 경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국내 증시의 상황을 빗댄 말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세계 증시가 연일 폭락하면서 국내 증시도 동반 폭락세다. 그 중에서도 코스닥시장의 낙폭이 더 크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기업들이 모여 있는 코스닥시장이 외풍에 더욱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외국인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코스닥이 선전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탈 코스닥' 행렬이 이어지고 있을 정도다. 심지어 부동의 대장주 NHN마저 코스피로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다 보니 남아있는 기업들, 특히 중소종목들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코스닥을 통한 자금조달밖에 돈을 끌어들일 방법이 없는 중소 코스닥종목들은 요즘 돈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증시가 활황을 보여 주가가 좀 올라줘야 증자라도 해볼 텐데 연일 주가가 떨어지다 보니 증자를 결의해도 이를 성공시키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기준주가보다 20~30%된 할인된 증자가격보다 유상증자 대금 납입일 즈음의 주가가 더 낮아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증자를 철회하거나 청약률 '제로(0)'의 참담한 성적표를 공시하기도 한다.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비록 채권이지만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특성상 이들의 발행성공 여부와 주가는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증자 결의→주가하락→실패→추가하락' 악순환

증시 상황이 좋지 못하다 보니 요즘 유상증자 등 자금모집을 결의한 기업들은 관련 공시만 나오면 급락한다. 9월 말 ST&I글로벌, 포넷, 에스피코프가 나란히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들은 하한가를 기록하기 직전, 모두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한 기업들이다.

포넷은 당시 2870만여주, 185억여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한다고 공시했다. 이 규모는 기존 주식 1주당 1주씩 증자를 하는 수준이다. 조달되는 자금은 전액 운영자금으로 쓸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ST&I글로벌 (0원 %)도 9월26일 장종료 후 2000만주, 122억원 규모의 주주배정을 결의했다. ST&I글로벌의 기존 주식수는 2251만여주였다.

에스피코프는 이날 개장 전 1500만주, 156억원 규모의 일반공모 방식 유상증자를 한다고 공시했다. 에스피코프의 증자 규모는 기존 주식수 1160여만주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이에 앞서 H1바이오는 9월25일 장종료 후 기존 주식수(803만여주)에 육박하는 800만주, 188억원어치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실시한다는 공시로 27일 하한가를 맞았다.

대규모 유상증자 결의가 주가급락으로 번지면서 증자까지 실패, 추가 주가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한다. 에스피코프 등이 동반 하한가를 기록할 때 함께 하한가를 맞았던 윈드스카이모빌탑은 유상증자에 청약율이 10%에도 못미치거나 청약이 아예 안되면서 하한가를 기록한 경우다.

◆눈물 머금고 자금모집 자진철회도

지난 2일 오페스는 100억원 규모의 BW 발행을 자진철회했다. 공교롭게도 액면병합으로 인한 거래정지가 끝나고 이날 매매를 시작한 오페스는 하한가로 직행했다. 이날 시작한 하한가는 9일까지 이어졌다.


지난달에는 엘림에듀가 15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발행을 취소했다. 유성티에스아이도 대주주를 대상으로 한 50억원 규모의 3자배정 유상증자를 자진 철회했다. 이들은 주가급락과 함께 증권선물거래소(KRX)로부터 불성실법인 지정예고까지 받았다.

유상증자나 BW 혹은 CB 발행을 시도한 결과 청약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금을 모으지 못하는데 그치지만 청약행위 없이 처음부터 자진철회하면 거래소로 부터 불성실법인 지정예고를 받는다. 일정기간 내 소명하지 못하면 불성실 법인이 된다.

이 같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자금조달 방안을 자진철회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증시약세로 발행 유가증권 세일즈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당국의 감시강화로 유가증권 발행문턱이 높아진 이유도 있다.

예컨대 일반공모 방식으로 유상증자나 BW, CB를 발행하는 경우, 금융감독원에서 자금의 사용처 등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요구한다. 최근 코스닥 자원개발기업들이 증자를 성공시키지 못하는 것도 이 관문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유전개발로 주가를 높인 에임하이가 유상증자 결의를 자진철회한 것이 대표적이다. 금감원은 특히 부실한 기업이 현실성이 의심되는 사업에 대해 유가증권 발행신고서를 제출할 경우 머니게임 가능성을 우려해 프로젝트 내용, 자금용처 등을 깐깐하게 따지고 있다.

◆자금조달 가장 큰 걸림돌 '신뢰'

일부 코스닥상장사들이 자금조달에 실패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금조달을 성공하는 기업들도 있다. 우수씨엔에스는 지난달 액면가(500원)에 크게 못 미치는 400원대에서 결의한 200억원대의 유증을 성공시켰다.

상식적으로 성공시키기 힘든 증자였으나 바이오 자회사인 프로메디텍의 합병계획 등 이후 일정에 대해 투자자들을 설득시켰기에 가능했다는 게 회사측 주장이다. 물론 증자 과정에서 우수씨엔에스도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했다. 이 증자가 최초 결의된 시기는 지난 3월이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상증자나 BW 발행 등이 실패하는 대부분은 자금의 사용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 경우"라며 "가뜩이나 수익을 내지 못하는 회사가 운영자금으로 쓰겠다며 증자를 하는데 이를 믿고 투자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시장 전체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3자 배정 등 투자할 사람이 일부 확보된 유상증자라도 제대로 된 사용처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투자하기로 했던 이들이 투자의사를 철회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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