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 때 우산 씌워주는 은행

머니투데이 권화순 기자 | 2008.10.07 20:01
- 1년 전 기업에 구애 나섰던 은행들 '변심'
- 기업銀 키코 안팔고 중기 적극지원 눈길

"앞으론 '디마케팅'이란 말을 사용하지 맙시다." 윤용로 기업은행장이 최근 임원회의에서 디마케팅 금지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디마케팅(de-marketing)이란 말 그대로 '마케팅을 안하는 게 마케팅'이란 뜻입니다.

은행권에선 요즘 중소기업대출에 대한 '디마케팅'이 한창입니다. 윤 행장의 당부가 새삼스럽게 들리는 이유입니다. 은행권은 신용도가 낮은 업체에는 신규 대출을 해주지 않거나 대출만기 연장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었습니다. A은행의 경우 연 7%하던 금리를 10%로 대폭 올려 대출 '대출 문턱'을 높였습니다.

물론 은행권의 '몸사리기'를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습니다. 글로벌 신용경색과 국내경기 침체로 중소기업의 경영 여건이 '최악'입니다. 자연스레 중기대출 연체율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지요.

하지만 불과 1년 전 '중소기업 모시기'에 나섰던 은행권의 풍경을 떠올리면 씁쓸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최근 2~3년간 '중기대출 쏠림'이 완연했습니다. 중소기업 성장률은 2%에 불과한데 대출 증가율은 30%를 넘어섰습니다. 은행권이 자산경쟁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선 결과입니다.


금융당국이 오히려 중기대출 자제를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지요. 은행권 관계자는 "중기대출 연체율이 급등한 요인 중 하나는 은행권이 물불 안가리고 대출을 늘린 결과"라고 꼬집습니다. 실제 B은행은 소호대출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속앓이' 중이라고 전해집니다.

은행권의 '냉온탕식' 대출과 다르게 기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을 꾸준합니다. 중소기업 의무대출 비율이 70% 이상으로 묶인 영향도 적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보다 중소기업을 '거래처'가 아닌 '파트너'로 인식한 때문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 거래가 한 예입니다. '키코전담반'을 꾸려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선 다른 은행들과 달리 기업은행은 키코 거래에 소극적이었습니다. 환율 변동에 따라 중소기업이 감내할 리스크가 크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거래고객을 경쟁 은행에 뺏기기도 했습니다.

최근 키코로 부실화된 중소기업 지원엔 팔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출자전환 옵션부대출, 운전자금 대출 등 자구책을 연달아 내놓았습니다. 또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차원에서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금 8조4000억원에는 만기를 100% 연장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쯤되면 '비올 때 우산을 뺏지 않는' 은행이 빛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몸값 124조? 우리가 사줄게"…'반도체 제왕', 어쩌다 인수 매물이 됐나
  2. 2 "연예인 아니세요?" 묻더니…노홍철이 장거리 비행서 겪은 황당한 일
  3. 3 [단독]울산 연금 92만원 받는데 진도는 43만원…지역별 불균형 심해
  4. 4 점점 사라지는 가을?…"동남아 온 듯" 더운 9월, 내년에도 푹푹 찐다
  5. 5 "주가 미지근? 지금 사두면 올라요"…증권가 '콕' 집은 종목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