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엔 넘치더니… 이젠 '달러 기근'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 2008.09.26 17:03
- 원/달러 환율, 4년래 최고치
- 은행권 '달러 돌려막기'
- 신뢰 무너지면 '외환위기' 재발 위험

정부가 해외부동산 투자를 전면 자유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지난해 11월. 연 5만달러 이하를 해외로 보낼 때 서류신고 의무도 없앴다. '외환제도 선진화'라는 명분을 깔았지만, 사실은 국내에 남아도는 달러화를 해외로 퍼내려는 포석이었다.

만성적인 달러화 초과공급으로 원/달러 환율이 장중 900원선마저 내주며 주저앉은 직후였으니 그럴만도 했다. 당시 끊임없는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의 주식 순매수 행진이 우리나라에 달러화가 넘쳐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불과 1년도 채 안 돼 우리나라의 달러 사정이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외국인이 연일 주식을 내다팔고 달러화 사자에 나서면서 외환시장은 이미 달러화가 모자라는 상황이 됐다. 달러화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1160원대로 4년여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오죽하면 작년까지도 해외투자를 장려하던 정부가 "미국에서 골프치고 공부시키는 것에 대해 시민단체가 먼저 말해주길 바란다"(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보, 26일 선진화포험 토론회)며 해외소비 억제를 요청하고 나섰을 정도다.

외환시장보다 달러화 부족이 더욱 심한 곳이 외화자금시장이다. 외환시장이 달러화 등 외화를 사고 파는 곳이라면 외화자금시장은 외화를 빌리고 빌려주는 곳이다.

국내 모든 은행이 빠듯한 달러 사정을 호소하고 있다. 외화대출의 경우 신규대출은 커녕 만기연장도 어렵다. 일부 은행은 아예 만기 3개월 이상 수출환어음(수출대금 담보 어음)의 매입을 중단했다. '달러 기근'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은행들은 근근히 '달러 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은행들이 매달 만기 연장해야 하는 외화차입금은 약 20억∼30억달러. 갚는데 쓸 달러화가 모자라 한달간 빌리려면 약 13%에 이르는 이자를 줘야 한다. 건전성이 낮은 금융회사는 이마저도 어렵다.


최종구 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최근 달러화 부족 문제에 대해 "외환위기 이후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정도"라고 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지난달까지만 해도 달러화를 빌릴 때 이자가 평소보다 조금 더 비쌌을 뿐 차입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다 지난 15일 미국 4대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 '직격탄'을 날렸다. 리먼의 파산 직후 미국의 자금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부도위험 보험'에 해당하는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 시장이 경색된 영향이 컸다. 리먼은 전세계 CDS 시장의 10대 큰 손 가운데 하나였다. 리먼의 파산으로 이 CDS 물량이 일시에 쏟아져 나올 경우 CDS 시장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국제자금시장을 덥쳤다.

미국 현지에서 돈줄이 꼬이자 미국계 은행들이 해외지점으로 달러화 공급을 크게 줄이거나 중단했다. 우리나라의 외국계 은행 지점들도 마찬가지였다.

외국계 은행 지점들을 통해 더 이상 달러화가 공급되지 않자 은행들이 달러화 부족을 감지하고 서로 달러화를 빌려주지 않으려 하게 됐다. 달러화를 미리 빌려두려는 '가수요'까지 등장했다.

정부가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은 모든 은행들이 서로를 믿지 못해 저마다 '달러화 빌려 재워두기'에 나서거나 급기야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를 사서 외화채무를 갚는 경우다. 정부가 외국환평형기금을 활용, 다음달초까지 100억달러 이상을 외화자금시장에 투입키로 한 것은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함이다.

최 국장은 "은행들은 웬만하면 외화자금시장에서 쓸 달러화를 외환시장에서 조달하지 않는다"며 "만약 은행들이 외화자금시장에서 도저히 달러화를 빌리지 못해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를 사기 시작하면 '외환위기'가 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다시 1997년의 '악몽'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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