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가는 부자가 되고 싶다면…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 2008.09.28 00:03

[영화속의 성공학]43번째..영화 '다크 나이트'

1. "인간이란 자신의 이익 추구에 대해 무한정한 탐욕을 지닌 존재다." 마키아벨리의 말인데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참 불편하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경제가 번성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실 인간의 탐욕에 가장 충실한 경제체제가 바로 자본주의 아니던가. "자본주의는 노동의 착취를 이윤으로 바꿔내는 부도덕한 체제"라는 사회주의자 알렉스 캘리니코스 교수 같은 이의 비판은 일단 논외로 하자.

시장주의자이자 경영학의 구루인 피터 드러커 조차도 "자본주의는 인간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못한다"고 꼬집은 바 있다. 사실 최근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 위기로 인한 신용 붕괴의 원인에도 드러커의 지적처럼 인간적인 부분이 사라진 데 따른 측면이 분명 녹아 있다.

미국의 금융 위기는 첨단 금융공학을 통해 탄생한 파생금융상품에서 출발했다. 이 파생상품의 구조는 이해하기 매우 어려워 보이는데, 단순화시켜서 그 원리를 한번 살펴보자.

경제활동에서 거래되는 대상에는 금이나 석유 곡물 같은 상품과 부동산, 그리고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 등이 있다. 이 거래 대상을 가지고 선물, 옵션, 스왑 같은 기본적인 파생상품 거래가 만들어 진다.

즉, 거래 대상을 미래의 한 시점에 '사거나 팔기로 약속'하고(선물), 그런 약속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을 부여하며(옵션), 그 약속과 선택권을 서로의 필요에 따라 바꾸고(스왑), 다시 이 같은 거래들을 '유동화'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분산시키면서 '최첨단'이라는 미명 아래 복잡해지기 시작하는 거다.

그러다 보니 내가 책임질 금액이 얼마인지와 거래 상대방이 불분명해지고, 내가 신용을 지켜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어느덧 모르게 된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상대방이 불행해진다'는 생각이 들면 신용을 지키려 노력할 텐데, 그런 상대방의 명확한 실체가 없는 최첨단 금융거래이다 보니 정작 금융의 기본인 '신용'이 사라지게 됐다. 그 빈 자리를 '오로지 상대방이 잃어야 내가 먹는다'는 제로섬 게임의 법칙이 대신한 채 말이다.

인터넷이 자유롭게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는 장이 되면서도, 익명이라는 그늘에서 폭력적인 댓글을 낳게 되는 것이나 비슷한 이치다. 최근 미국의 경제·금융 위기는 어찌 보면 '(경제활동에 있어) 인간 관계의 상실에 따른 신용의 실종'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2. 영화 '다크 나이트'는 베트맨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이른바 '작가주의 블록버스터'의 완결판을 보는 듯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연출 실력이 그야말로 놀랍다.

그러나 재미있게 영화를 보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내내 불편했다. 영화가 만화를 원작으로 한 비현실적인 '영웅물' 임에도, 탐욕과 이기심에 물든 세상과 인간의 내면 심리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최강의 악당 조커가 이끄는 강도단이 갱들의 돈이 모이는 은행을 턴다. 강도단의 무리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고, 서로에 대해서는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오로지 악당 조커가 조직했으며 '같은 목적' 하에 행동한다는 공통점밖엔 없다. 조커는 이 같은 구조 아래서 강도단 구성원들의 탐욕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자신에게 돌아가는 몫을 늘이기 위해 제 역할이 끝난 팀원들은 바로 다음 역할을 하는 팀원에게 죽임을 당하도록 만든다. 금고 기술자는 금고를 열자마자, 돈을 차에 실어내는 팀원에게 살해당하고, 돈을 다 싣자 그는 차를 모는 팀원에게 살해당하는 식이다.

'나도 어려운 판에 남이 잘못되는 건 어쩔 수 없다'며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조커는 범죄에 철저하게 이용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일단 참자. 대신 사람들의 이 같은 이기적 심리에 대해 살펴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심리학에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라는 용어가 있다. 자기 가치관이나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받아들이려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이야기다. 아, 얘기가 딱딱하니 안 되겠다. 영화 속에서 하나만 예를 들자. 조커의 사주로 하비 던트 검사와 그의 애인 레이첼을 납치했던 부패경찰들이 딱 그렇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돈이 필요했던 이 부패경찰들은 납치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고, 돈이 필요했던 자신의 어려운 상황만을 앞세워 변명한다. 천하의 악당이 검사를 납치한다면 할 짓이 뭐가 있겠는가. 그들을 죽이든지 아니면 뭔가 나쁜 일에 이용할 게 뻔한데도 그들은 그런 사실에는 눈 감아 버린다. 영화엔 내내 이런 우울한 인간의 이기심이 깔려 있다.

3. (그 비중이 극히 작지만) 물론 영화에는 인간의 긍정적인 모습도 나온다. 조커는 피난선 2대에 각각 시한폭탄을 설치하고, 시한폭탄 스위치를 각각의 배에 나눠 준다. 그리고 먼저 누르는 쪽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 통보한다.

조커는 두 대의 배 중 한 대는 반드시 폭파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 예상은 빗나간다. 두 배의 승객들이 모두 스위치를 부숴버리거나 배 밖으로 던져 버린 것. 이 대목에서 유명한 게임 이론인 ‘죄수의 딜레마’가 떠오른다.

범죄를 같이 저지른 갑과 을, 2명의 동료가 잡혀 들어왔다. 둘은 서로 대화하지 못하도록 각각 독방에 각각 갇혔다. 이들의 범죄는 아직 완전히 입증되지 못한 상황이다. 경찰은 이 갑과 을에게 이런 협상안을 내놓는다.

첫째. 갑이 을의 죄를 증언하고, 만약 을이 갑의 죄를 말하지 않는다면 갑은 석방되며 을은 3년형을 받는다.
둘째. 갑과 을이 모두 서로의 죄를 증언하면 둘 다 2 년 형을 받는다.
셋째. 둘 다 묵비권을 행사하면 두 사람 모두 1 년 형에 그친다.

가장 최선의 선택은 물론 둘 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인데, 이는 두 사람 간에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런 믿음이 있다고 보기 힘들 경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은 두 사람 다 자백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세상에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러나 사람간의 믿음이 없다면 결국 세상은 삭막해지고 위기에 몰려 결국 멸망하게 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을 밟아선 안 된다. 사람들을 모두 이롭게 하면서 부를 얻어야 오래 갈 수 있다. 300년 부를 이은 경주 최 부잣집만 봐도 그렇다. 그 집 가훈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흉년에는 땅을 사들이지 말고, 근동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당시만 해도 흉년에 헐값에 나온 땅을 사들여 농민을 소작농으로 전락시키는 양반들이 많았으나, 최 부잣집은 절대 그러지 않았고 대신 곡간을 풀어 그들이 어려운 시절을 이겨 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 사들인 땅에서 나는 소출도 공정하게 분배, 농민들이 더 많은 수확을 거둬 들이도록 유도해 자신의 부를 늘려가는 상생의 선순환을 만들어 갔다.

이기적인 탐욕은 오래 가지도 못하는 작은 이득을 줄 뿐이지만, 사람간의 믿음을 쌓으면 오래 가면서도 튼실한 큰 수확을 준다. 경제가 어렵다. 이런 때 일수록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것을 불리는 대신, 모두의 것을 늘려 가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람이 욕심 없이 살 수 없지요. 하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욕심을 채워서는 안 되고, 남의 불행 위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도 안 됩니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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