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개발금융 전도사인가 투기자본인가

더벨 길진홍 기자 | 2008.09.26 13:54

19세기 미국 철도산업 PF 국내 실험...부동산 불황 실패로 돌아가

이 기사는 09월25일(13:49)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순수 투기자본인가, 선진 개발금융 전도사인가’

이달 파산보호를 신청한 미국계 IB 리먼브러더스에 대한 업계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단기 고수익을 노린 글로벌 투기자본이라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기업금융 위주의국내 IB에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라는 선진금융을 접목시켰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업계의 엇갈린 평가 속에 리먼브러더스는 최근 수년간 국내 부동산 시장 불황과 맞물려 투자 수익률이 곤두박질 쳤다. 한때 국내 부동산 개발업계에 '큰손'으로 군림하던 미국 4위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는 이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고로 좌초된 난파선에 몸을 실은 체 국내시장에서 쓸쓸한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1. 단기 차익실현보다 수익형 개발 사업 선호

2001년 리먼브러더스 인터내셜증권 서울지점을 시작으로 국내 입성한 리먼브러더스는 장외파생상품, 은행업 등에 진출하며 주로 고수익 고위험 부동산에 투자했다. 업계에서는 리먼브러더스의 투자 방식은 고리로 자금을 뜯어가는 대부업체와 흡사했다고 입을 모은다. 리먼브러더스는 입지가 쳐지거나 대량 미분양이 날 가능성이 높은 악성 사업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또 대부분 개발사업은 국내 금융사에 선순위를 내주고 후순위로 들어가 매년 30%대의 이자수익을 챙겼다.

이러한 리먼의 투자 방식은 2002년을 전후해 국내 부동산 시장 활황과 맞아 떨어지면서 대박을 터트렸다. 리스크가 높은 사업장도 2000년대 초반 몰아닥친 부동산 광풍을 타고 순항할 수 있었고, 결국은 남는 장사였다.

리먼은 강남권 타운하우스에서 변두리 오피스텔과 쇼핑몰, 도심 외곽 주택사업에 이르기까지 투자 상품을 가리지 않았다. 대부분 일반 아파트에 비해 사업성이 떨어져 시행자가 자금 융통이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같은 시기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입성한 론스타, 맥쿼리, 도이치방크 등의 글로벌 IB들이 안정적인 국내 오피스 빌딩에 매달린 것과 180도 다른 길을 걸었다.

리먼은 또 단기 매매 차익을 노리기보다는 토지매입부터 건물 준공에 이르기까지 개발사업 전반에 참여했다. 담보가 없어도 메자닌론(무담보여신)으로 자금을 대줬다. 대신 사업기간 내내 높은 수수료와 이자를 챙겼다. 사업이 완료되면 배당금 명목으로 자금을 회수해 갔다. 리스크를 떠안는 만큼 수익을 가져가야 한다는 논리였다. 당연히 투자 수익률 7% 안팎의 국내 오피스빌딩이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2. 개발사업 '리먼브러더스 효과'.. 부동산 불황 부실 눈덩이

고수익을 쫓아 공격적인 투자를 하다 보니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한때 부동산 개발업계에는 돈이 없어도 리먼만 잡으면 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입지가 좋지 않아 사업성이 떨어지는 프로젝트들이 모두 리먼으로 몰렸다.


한탕주의로 개발사업에 뛰어든 시행사들과 고수익을 쫓는 리먼의 요구가 맞아 떨어지면서 부동산업계에는 리먼 바람이 불었다. 리먼으로부터 자금 조달은 계약률을 높이는데도 심리적인 효과가 대단했다. 미국계 투자은행이 돈을 대는 사업은 믿을 만한 구석이 있을 것이란 기대 심리가 계약자들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2005년 이후 부동산시장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잔치도 끝이 났다. 해외에서와 마찬가지로 지난 수년간 국내 부동산에 공격적인 투자는 부실로 되돌아왔다.

대표적인 예가 입점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동대문 라모도 쇼핑몰이다. 리먼은 2004년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라모도에 자회사인 매화케이스타스, GKI디벨로프먼트 등을 통해 후순위로 665억원을 투자했다. 매화가 바스코에 집행한 대출은 91일물 CD금리+5% 혹은 9% 금리 중 높은 금리를 적용했다. GKI는 CD금리+12.50% 조건으로 115억원을 라모도에 투자했다. 그러나 리먼은 라모도가 사실상 정상 운영을 하지 못하면서 투자 자금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리먼은 렘텍코리아가 개발한 성북동 고급주택단지 성북힐 레지던스에서도 손해를 봤다. 후분양 사업으로 공사기간 중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심 외곽의 저층 단독주택 사업에 국내 금융회사들도 선뜻 자금을 대주려 하지 않았다. 리먼은 지난 2003년 GKI를 통해 무담보여신으로 이 사업에 190억원을 투자했다. 약정이율은 연 25% 수준이었다. 리먼은 대출 수수료 명목으로 1%를 선취하고, 실행수수료로도 매달 500만원씩 받아갔다.

그러다가 성북힐 레지던스가 장기간 분양 계약자를 찾지 못하면서 채권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리먼은 2007년까지 성북힐 레지던스 개발 사업에 쏟아 부은 돈은 모두 321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메자닌론이 292억8000만원(연이율 30%), 시니어론이 29억원(연이율 19%)을 차지하고 있다. 2008년 현재 이자 및 수수료 비용을 포함한 성북힐 레지던스 채권규모는 418억원에 달한다. 성북힐 레지던스 자금관리를 맡고 있는 다올부동산신탁에 따르면 리먼브러더스는 투자 원금 대부분을 회수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3. 리먼브러더스가 남긴 교훈

업계 한 관계자는 리먼은 글로벌 IB로는 처음으로 국내에 순수 프로젝트금융을 들여왔다고 평가했다. 리먼은 19세기 미국 철도산업 프로젝트 파이낸싱에서 얻은 노하우를 그대로 국내에서 실험했다. 사업성만 보고 무보증으로 토지매입을 위한 계약금부터 공사비용, 사업비까지 지원했다. 당시 PF영역이 사업부지 담보와 시공사 지급보증에 제한되던 국내 금융계로서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리먼은 담보를 잡지 않고 프로젝트만을 보고 들어가도 투자수익을 챙길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줬다.

이는 국내 금융회사가 PF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3~4%대의 조달 금리로 10배에 가까운 이자 수익을 남기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특히 국내 저축은행 PF 대출의 폭발적 증가를 거들었다.

하지만 리먼의 투자 신화는 수명이 길지 못했다. 부동산 시장에 그늘이 드리워지면서 부실 채권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또 채권자로 사업장을 떠안는 과정에서 시행업계와 마찰도 잦았다. 후순위 무담보여신으로 이자 수익은 물론 개발 완료 후 경영권 지분까지 쥐려는 리먼식 투자를 국내 정서는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19세기 리먼브러더스 성장의 발판이 됐던 프로젝트 금융의 국내 실험은 실패로 돌아간 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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