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피해 어쩌다 커졌나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 2008.09.25 08:48

은행 '수수료' 기업 '환테크', 리스크 관리부실로 날벼락

지난해 부동산경기 침체로 주택담보대출이 위축되자 시중은행들은 중소기업대출을 급격히 늘리기 시작했다. 영업 경쟁이 치열했고, 이 과정에서 통화옵션상품 '키코'(Knock-In Knock-Out) 논란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수익악화에 고민하던 은행들은 키코를 무위험의 수수료 상품으로 보고 판매를 강화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환율이 하향 안정 추세에 놓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었다. 은행은 높은 수수료를 챙기고, 중소기업들은 환테크를 통해 이익을 남길 수 있어 이해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컸다.

일부 은행의 경우 10∼20명 규모의 키코 판매 전담반을 구성하기도 했다.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던 한국씨티·SC제일 등 외국계 은행과 신한·외환은행 등에 거래가 집중됐다. 그간 기업금융에 강점을 보여온 신한·하나은행 등이 키코 거래로 곤욕을 치르는 것도 눈에 띈다.

금융계 관계자는 "기업금융에 노하우가 있던 은행들의 경우 기업여신에 좀더 관대한 측면이 있었던 것같다"며 "여신관리시스템 자체가 상대적으로 개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기업은행의 경우 환율 변동에 따라 리스크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는 상품인 만큼 거래를 원하는 일부 업체에만 소극적으로 키코를 판매했다. 우리은행과 국민은행 역시 위험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본점을 통해서만 키코 거래를 하도록 했다.

결국 키코 판매 건수가 은행별 파생상품에 대한 리스크 관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키코 판매가 집중된 것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이다. 신한·하나은행 등은 키코 판매를 독려했고 지점에서도 가입이 가능토록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부 기업은 계약금액이 수출대금 규모를 초과해 과도한 거래를 했는데 은행 본점에서 어떻게 심사승인이 이뤄졌는지 이해가 안간다"며 "영업경쟁이 치열해지는 과정에서 리스크 관리에 소홀했던 측면이 있었던 것같다"고 말했다.


해당 은행들은 키코 외에 스노볼·피봇 등 투기성이 가미된 상품까지 판매했다. 키코는 계약시점부터 만기 때까지 환손익의 기준이 되는 환율 행사가격이 고정돼 있다. 반면 스노볼은 매달 행사가격이 변동돼 원/달러 환율이 몇개월 사이에 100원 이상 급등할 경우 헤지물량 전액을 손해볼 수 있는 상품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키코는 판매은행이 똑같은 조건으로 외국계 은행과 '백투백' 헤지 거래를 한 탓에 은행은 피해를 보지 않는 구조"라며 "피봇 등은 기업이 계약이행능력을 상실할 경우 대신 계약을 이행해야 하기 때문에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키코 등 환헤지 상품거래 손실로 회생절차를 신청한 태산엘시디가 대표적인 경우다. 태산엘시디는 한해 달러 결제 매출을 훨씬 초과하는 금액에 대한 환헤지 상품(피봇) 계약을 했다. 환헤지용 상품이 오히려 환리스크를 키운 부메랑으로 작용해 '흑자부도'를 낸 셈이다.

이 회사는 올 상반기 매출 3441억원에 11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환헤지 상품 가입에 따른 피해액이 지난 6월말 기준 806억원에 달했다. 월 단위로 상품 만기가 돌아오면 손해분을 하나은행에 납입해야 하는데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납입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를 견디지 못하고 부도를 냈다.

이처럼 피해를 본 중소기업들은 주거래은행들이 키코의 장점만 부각시켜 가입을 권유했다고 하소연한다. 부족한 자금을 거래은행으로부터 조달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이른바 '꺾기'를 당했다는 곳도 있다. 목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강요 반, 권유 반으로 키코에 가입했다는 것.

은행들은 반대로 판매 당시 파생상품의 기본위험을 충분히 알렸음에도 결과가 나쁘자 기업들이 뒤늦게 걸고 넘어진다고 강조한다. 영업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갑을 관계가 바뀐 경우도 있었다는 전언이다. 키코를 보수적으로 판매한 은행들은 경쟁은행에 주거래 고객을 뺏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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